<노벨상 정상회의> 광주개최 의미와 성과

<노벨상 정상회의> 광주개최 의미와 성과 [연합뉴스 2006-06-17 18:12]

노벨평화상 회의 광주선언문 발표
'광주, 민주.인권.평화도시로 각인'
유력 정치인 불참 등 아쉬움


(광주=연합뉴스) 송형일 기자 = 3일간의 평화여정을 끝낸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는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은 '광주'를 전 세계인들에게 '민주와 인권.평화의 도시'로 새롭게 각인 시켰다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지구촌의 평화 정착에 앞장서 온 국내외 지도자들과 단체 등 100여명 이상이 참가한 매머드급 국제행사가 광주서 열릴 수 있었던 점도 이곳이 5.18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데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회의 의미를 마무리한 '광주선언문'에서도 이 같은 점은 잘 드러나 있다.

회의 참가자들은 한국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한반도와 세계의 민주주의, 평화를 위한 인류의 염원과 역사적 책무를 확인했다며 그 의미를 부여했다.

또 군부독재에 항거, 민주화를 외친 5.18 민중항쟁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것은 물론 5.18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등 전국화, 세계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벨상 정상회의를 로마가 아닌 곳에서 개별국, 그것도 지방에서 열게 된 것은 5.18에 대한 존경과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튼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된 것도 이번 정상회의 개최의 큰 취지다.

더욱이 정상회의가 열리는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6.15를 기념하는 남북통일대축전이 함께 열린 점은 행사 의미를 더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철학과 지혜를 모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남북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조성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광주선언문도 상당부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북핵 문제나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며 할해했다.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 "북한 지도부는 미사일 발사는 옳지 않고 대화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미국도 북한에 압력만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또 군사독재와 내전 등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거나 민주화가 진행중인 아시아 국가와 국민에게 민주와 평화. 화해와 협력이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평화 증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비폭력과 용서, 화해 등 평화적 방법을 강조한 대목이나 빈곤퇴치, 여성 권익 신장, 환경파괴 등 지구촌이 안고 있는 난제들을 풀려는 노력 등을 참가자들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누차 강조됐다.

특히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핵문제 확산방지를 위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확대, 플루토늄 생산 차단 협약 등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같은 5.18민주화운동과 6.15 정신의 바탕 위에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나아가 전 세계 평화를 추구한 학술대회는 이번 광주회의의 성과를 더했다.

무엇보다 광주가 이 행사를 통해 국제도시로 도약하고 이를 지역경제의 활로와 돌파구로 연결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이번 정상회의 개최의 가장 큰 성과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행사 참가자수 등 외형 부풀리기에 연연한 점이나 달라이 라마 등 유력 정치 지도자 등이 국내외 사정으로 불참한 점, 준비소홀로 개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과테말라 시민운동가 등이 참가하지 못한 점 등은 아쉬운 대목이다.

또 월드컵 열기나 남북통일 대축전과의 중복 등으로 정상회의가 국민들의 관심을 제대로 끌지 못한 점 등도 아쉬운 점이다.

nic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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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38 이하 *
200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조선시대 만큼 옛날로 느껴졌던 역사였습니다. 역사시간에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의미 없이 날짜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기 일쑤였죠. 하지만 오늘 5.18을 추모하며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가 민주 항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늘의 제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
37 최연 *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36 김민 *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5 양희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34 노무 * 빨갱이 폭동
33 노무 *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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