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사 보고 및 제39주년기념 선언

[5․18민중항쟁사 보고 및 제39주년기념 선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5·18민중항쟁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5·18민중항쟁 39주년입니다.

 

먼저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집권야욕에 맞서 목숨을 바치신 5·18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기본권을 유린해왔던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는 1979년 10.26으로 붕괴되었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일당은 정권찬탈 시나리오에 따라 1980년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들의 불의에 저항하는 광주시민들과 김대중을 엮어 폭동으로 덧씌우고 폭력으로 진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그동안 계엄군에 의해 봉쇄된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슬픔과 공포, 절박함 속에서 수많은 무기들이 풀렸는데도 불구하고 무정부 상태의 광주에는 단 한 건의 폭행, 범죄, 도난, 사재기 등도 없었다. 병원에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헌혈을 하겠다며 너나없이 줄을 섰다. 동네마다 밥솥을 내걸고 모두가 주먹밥을 나눴다. 이는 광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이루어낸 항쟁 및 대동 공동체였다.

 

무력 진압 후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5·18민중항쟁을 ‘폭동’으로 매도하였다. 항쟁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쫓겨나고 수배되어 전국 도처로 쫓겨 다녀야 했으며 투옥과 고문을 당했다.

 

5·18항쟁 후, 전국의 대학생, 노동자, 국내외 수많은 민주시민과 단체들은 ‘5·18진상규명과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단식·투신·분신 등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갔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 당했다.

 

수많은 희생과 헌신의 결과,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어 전두환, 노태우 등 92명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1997년 5·18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제정공포한 이후 5·18국립묘지에서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5·18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사건임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민주·인권·평화·통일의 5·18정신은 87년 6월항쟁으로 되살아났고, 2016년 촛불혁명으로 부활해 장엄하게 타올랐건만, 5·18민중항쟁 역사 왜곡은 끊임없이 자행되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4번의 공식적인 조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아직 묻혀있다. 군부독재 시절 소위 ‘80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는 광주항쟁 관련자료를 조직적으로 은폐·폐기·조작했고 시체소각과 수장 등으로 증거를 인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거짓선전, 2017년 전두환 회고록을 넘어 금년 2월8일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열린 ‘대국민 공청회’는 그 절정이었다. 상습범 지만원과 김진태·이종명·김순례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폭동”,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를 확대재생산해 국민을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 2월 11일부터 98일째 국회앞에서 항쟁 최후지도부 동지들와 함께 ‘5·18역사왜곡저지농성’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5·18서울기념사업회는 5·18민중항쟁 39주년에 즈음하여 다음의 사항을 강력히 요구한다.

 

1. 광주 집단학살명령자 전두환을 재수사하여 사법처리하라!

2. 국회망언, 김진태·이종명·김순례를 국회에서 제명하라!

3. 5·18역사왜곡 상습범 지만원을 당장 구속 수사하라!

4. 5·18역사왜곡처벌법을 제정하라!

5. 5·18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여, 민간인 학살 및 학살명령체계, 사체 소각 및 수장, 성폭행, 교도소 습격설, 북한군 투입설 등을 밝혀라!

 

또한 우리 5·18서울기념사업회는 5·18정신을 왜곡·폄훼하고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맞서서, 민주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민주대한민국을 세워가는 일에 더욱 노력할 것임을 천명한다.

 

다시 한번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사)5·18서울기념사업회 회장 최병진

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38 이하 *
200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조선시대 만큼 옛날로 느껴졌던 역사였습니다. 역사시간에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의미 없이 날짜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기 일쑤였죠. 하지만 오늘 5.18을 추모하며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가 민주 항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늘의 제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
37 최연 *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36 김민 *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5 양희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34 노무 * 빨갱이 폭동
33 노무 *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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