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2008년/글]우수상 - 최홍비(휘경여중1)
우수상·서울지방보훈청장상
역사는 돌고 돈다
최홍비 휘경여자중학교 1학년
나는 어릴 때부터 ‘역사는 돌고 돈다’라는 말을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사적 사건이나 경로를 모르던 그 때, 왜 항상 ‘암흑의 역사’라고 하면 일제 강점기만 생각났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조금 더 자라고 나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4학년 때였을까? TV 모 방송사에서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를 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장면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이고 진실을 실토하라고 고문을 당한 후, 전두한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장면이었다. 어릴 때는 ‘역사가 돌고 돈다면 언젠가는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두려워했었지만, 전두한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오른 후 ‘같은 나라 사람이 더 무섭구나’하는 생각을 자아낼 만한 사건이 터진 것을 기억한다.
5.18에 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내용은 간단했다. 광주의 시민들이 나라에 반발하여 시위를 하고, 군인들은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압력을 가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전두한 전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겼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명령하셨나요?”하고 말이다.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을 당시에만 사용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그 때 당시에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저렇게 무서워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군인들이 먼저 무력을 사용하자, 광주 시민들도 시민 군대를 결성했다. 제대로 된 도구도 없고, 훈련도 받지 못했지만, 목숨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광주 전체를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 시민들은 스스로가 규칙을 지키고, 서로 도와야만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5월 18일 전까지 광주 내에서 도둑질이나, 폭행 같은 행동이 없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악행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침내, 5월 18일. 군인들은 광주 시민들을 향해 가차 없이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일로 인해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죽임을 당했다. 많은 희생자를 낸 5.18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억울하게 죽어야 하지?’였다. 그들이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억울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통치권자가 군사를 동원하여 어떠한 일을 하려면, 그 일을 행해도 좋다는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미국이 동의를 해 준 걸까? 두 가지의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미국이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함부로 승인을 했다는 것이고, 만약 그 경우가 아니라면 전두한 대통령이 “우리나라 사람들 죽이는 게 아니라, 국방력 좀 강화하려고요.”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고향이 광주셨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에게 5.18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군인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집집마다 창문을 쏘아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한발 한 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들의 무모한 죽음이 외부에 알려지지 못했던 것은 정부가 통신까지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하루의 사건, 사고를 알려주는 오늘날과는 달리, 항상 ‘오늘 전두한 대통령이.......’라고 시작하는 일명, “땡전뉴스”를 진행했다고 한다.
가끔씩 꿈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괴롭혔던 아이가 나올 때, 정말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후회하게 된다. 그런데 전두한 전 대통령은 사람을 단순히 괴롭힌 것도 아니고,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마음 속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을까? 광주 전역을 둘러싸고 레이더망을 좁혀나가면서 보이는 사람을 하나하나 없앨 때. 총을 쏘는 군인의 마음은 어땠고, 당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는지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내 부모, 형제, 그리고 내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기에 어떤 괴로움을 느꼈는지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5.18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는 그리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민주주의는 인골 탑 위에 세워 진 걸까?’하는 생각마저 들고는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독재 정치가 발생하고,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만들어진 민주주의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더욱 깨끗하고, 바르게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를 할 때 후보자에게 뇌물을 받아 그를 찍어주는 것도 깨끗한 민주주의가 아닌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셨던 모든 분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지 싶다.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들께서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어차피 역사는 반복되게 되어 있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을 알기 위해, 뿌리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돌이켜보고 다가 올 미래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너희들이 잘 대처해야 돼.”라는 말씀이다. 그런 말씀도 저학년 때는 하시지 않으시기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깊은 다짐을 했지만, 요 근래에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있다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2008년 지금, 갑자기 군사정변(쿠데타)이 일어나서 새로운 정부를 세웠어. 우리 시 전체가 반발했더니 군인들이 시를 둘러싸더니 사람들을 모두 없애려고 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면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확신이 선다. 계속 돌고 도는 게 역사라면, 23전 23승의 신화인 이 순신 장군의 패기를 물려받아 우리 민족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적인 정보화 전쟁, 또는 외교에서 승리하여, 우리의 후손들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역사로 남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