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2008년/글]본선 심사평 - 정희성 시인
백일장 부문 심사소감
본선 심사위원 정희성 (시인, 한국작가회의 고문)
올해는 5․18 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28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어린 학생에서부터 십칠팔세 되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글을 대하면서 민중항쟁은 퇴색퇴지 않고 끊임 없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어린 학생들이 태어나기 십년 이십년 전의 일이니 글에 나타난 오월 광주의 기억은 체험적 진실이 아니라 학습된 것임이 분명하다. 교과서, 다큐멘터리, 기록사진, 민주화운동 관련서적, 영화에서부터 가족들의 체험담, 선생님들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전수되는 ‘그날’의 기억은 단지 기억으로 끝나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곰곰 되물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소상한 기억과 형상화 능력은 그러나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글을 심사하면서 종종 느끼는 갈등이 있다. 표현력이 미숙하지만 오월 광주의 의의를 잘 이해한 교훈 적인 내용을 택할 것인가 진정성이야 어떻든 형상력이 뛰어난 글을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날’의 일은 체험적 진실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어른들의 입김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확인하기 어렵지만 어른들이 글쓰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학생들의 얼굴에 분칠을 해서 어릿광대로 만드는 짓이다. 특히 중학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올해는 고등부 산문에서 아주 짜임새 있는 글 한편을 발견하여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땐 그랬지’는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일을 꾸며서 쓴 소설일 수도 있고 체험적 진실일 수도 있는 매우 짜임새 있는 글이다. 5․18 당시 기자였던 할아버지가 민중항쟁 과정에서 아들을 잃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 미국으로 떠났다가 손자와 함께 돌아와 아들 묘소를 참배하며 손자에게 그날에 있었던 일의 전말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이 글은 체험적 진실을 전수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작품성과 교훈성을 하나의 형식 속에 아우른 이 깔끔한 글을 발견한 것은 올해의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