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2009년/글]우수상 - 이병호(경기고2)
무엇이 고모부를 펄럭이게 했을까
이병호 (경기고 2학년)
29년 전 광주. 군사 독재 정권의 계엄령에 분노하여 거리로 뛰어나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전진했던, 독재타도를 외치며 달리던 이들이 있었다. 1980년 광 주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의 하나로 평가 되고 있으며, 덕분에 대한민국은 대외적으로 ‘단기간에 경제와 민주 정치를 함께 발전시킨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저항의 중심에 지난 3월 15일 세상을 떠나신 고모부가 계셨다.
고모부가 충주에 사셨기 때문에 사실 고모부와 만나는 날은 1년에 몇 번이 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어린 나 의 눈에 비친 고모부의 모습은 단순히 ‘괴짜’였다. 늘 비슷한 개량 한 복을 입고 계셨고 수염을 길게 기르셨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대상도 ‘수염’이었다. 어린 나에게 이 ‘수염’은 정말 신 기했고 부모님께 물어 수염이 ‘저항’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그 이후에 고모부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한 적은 없는 듯 하 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고모부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부 모님을 따라 충주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다. 절할 때 앞에 걸려 있는 고모부 영정 그림이 너무도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겨레신문에는 도종환 시인의 추도시, 『펄럭이는 그대-권영국 선생을 보내며...』가 고모부 사진과 함께 실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모부에 대한 나의 의문은 커졌고, 고모부의 생애를 알아보고, 이에 따라 고모부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고모부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무척 유명한 사람이었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모부는 1980년에 공주대학교 학내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전국에 수배되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고모부의 생애에 이를테면 첫 번째 ‘공식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5월 17일, 광주민중항쟁 하루 전에 광주로 내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시고, 도청이 함락되기 직전 광주 탈출에 성공하지만 결국 체포되어 징역3년의 구형을 받는다. 고모부는 법원에서 “살인마 전두환을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외침을 남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81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다. 86년에 첫 교사 발령을 받으셨으나 불과 3년 뒤인 89년, 전교조 충북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았다가 다시 구속된다. 고모부가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신 것도 89년 구속 이후라고 한다. 이 수염 때문에 생긴 재밌는 일화는 고모부가 딱 한 번, 반강제로 수염을 깎은 일이다. 할머니께서는 고모부(사위)가 수염을 기르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는데 할머니 회갑 잔치 때 ‘수염을 깎지 않으면 잔치에 올 생각을 말라’라는 할머니의 ‘협박’(?) 때문이었다. 물론 이후에는 다시 수염을 길렀고 할머니도 결국 포기하셨다.
도종환 시인의 추도시에는 고모부가 늘 맨 앞에서, 자기들 열 발짝 앞에서 스스로 깃발이 되어 펄럭였다고 묘사되고 있다. 고모부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오셨을 때 몇 번 우리 집에서 주무신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지만 그 미소조차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많이 야위었던 모습을 보아온 나로서는 무엇이 고모부를 그렇게도 힘차게 펄럭이게 했는지가 참 궁금할 뿐이다.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에서 내가 찾은 공통점은 바로그들이 기꺼이 자기 희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자기의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을 고생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희망과 혜택을 주었다. 이렇듯 비합리적으로까지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와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고 점점 성장해왔다. 이 성장이야말로 위에 언급한 ‘자기 희생’을 앞 세대들이 기꺼이 감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성장의 과정에서 겪었던 불가피한 여러 번의 진통을 극복가능하게 했던 이 자기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땅에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이클 경기에서 무리의 맨 앞에는 도우미 선수가 경주의 반을 마칠 때까지 바람을 막아주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어 뒤에 따라오는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력으로 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처럼 ‘괴짜’ 고모부가 우리보다 열 발자국 앞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며 펄럭였기 때문에 우리가 바람을 덜 맞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고모부의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고모부는 우리 모두에게 참 고마운 도우미다. 고모부 산소에 묘비가 세워지면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가기로 했는데 광주에 내려가면 내가 산소 옆에서 바람을 막아드리고 싶다. 그렇게 해서 모진 바람을 맞으셨던 고모부의 삶, 그 깊고 진한 향기를 잠시나마 맡아보고 싶다. 그리고 꼭 고모부께 여쭤봐야겠다. 무엇이 고모부를 그렇게 펄럭이게 했냐고. <끝>
<작품설명-지난 3월 15일 돌아가신 5.18 국가 유공자셨던 고모부를 추억하며 고모부의 삶 속의 5.18정신을 찾아보는 작품으로 도종환시인의 ‘펄럭이는 그대-권영국선생을 보내며’라는 추도시를 곱씹어 보았다. >
<응모계기-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갖고 있는 부모님께서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대회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고 참가를 권해주셨다. 이참에 고모부에 대해 좀더 찾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응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