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2009년/그림]본선 심사평 - 홍성담 화가
“ .... 이 청소년들이 그린 그림의 기억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에 희망의 씨가 묻어졌다. 그리고 이 벅찬 가슴으로 어떤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는 법 없이 살아갈 것이다. ” - -5.18기념 제5회 서울청소년대회 본선 심사위원, 화가 ‘홍성담’님의 글 中에서 -
** 5.18민중항쟁기념 제5회 서울청소년대회 그림부문 심사평 **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청소년들의 그림을 두고 ‘심사’라는 말이 온당치 않듯이
이 글 역시 ‘심사평’ 이라는 제목은 걸맞지 않다.
그들이 오월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적 내용으로 자신들의 내밀한 생각과 이야기를 그려낸 그림들을 심사하겠다는 나의 행위가 역시 온당치 않다.
그래서 이 글은 심사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상평이 합당할 것이다.
나는 30 여년 전 ‘오월광주’의 역사적 현장 속에서 문화선전대의 한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살의 진상과 ‘오월광주’의 역사적 의미를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작업에 천착해 오고 있다. 그동안 화가 동료들이 그렸던 오월과 관련한 이런저런 많은 그림들을 마치 나의 살 조각을 들여다보듯 유심히 보아왔다. 역사적 사실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1980년 오월은 이 공모전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겐 너무 먼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시 현장에 대한 기록으로만 그려진다면 별다른 감동치가 없다. 오히려 그 역사적 사실을 빌려 오늘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 할 때 오히려 지난 역사를 잘 이해하게 되고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명상으로 오늘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기도 하고, 혹은 거꾸로 현실에 대한 깊은 명상이 과거의 역사적 진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난 후 벌써 한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들 그림이 준 감동에 흠뻑 젖어 있다.
그들이 그린 대부분의 그림들은 자신들이 직접 마주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30여년 전의 ‘오월광주’가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보고 느낀 현실을 바탕으로 광주 오월을 ane고 있다.
그래서 이들 세대들이 직접 연출하고 만들었던 작년 ‘촛불’이 그림 속에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 하얀 손에 쥔 촛불이 우리들의 지난 역사들과 어떻게 관통하고 오월광주와 어떻게 맥락이 닿아 있는지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그림들은 아주 전통적이고 소탈한 기법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또 어떤 그림들은 새로운 세대답게 유니크한 기법으로 현실의 주제를 오려내듯이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다. 화면 구성도 자유스럽고 간혹 귀퉁이에 써놓은 구호도 간단명료하다.
또는 정치적 목적에서나 혹은 무관심에서 점점 피폐해져 있는 오월정신을 ‘다시 심자’는 포스터 형식의 그림도 감동스럽다.
중학생 청소년은 촛불을 든 가녀린 소녀를 그렸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를 보여달라’며 우리 어른들에게 애원하듯이 속삭이고 있다.
한 할머니가 손자처럼 보이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영정사진은 30년 전의 아들이되 그것을 들고 있는 어머니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다. 사진 속에서 마냥 밝기만 한 아들의 표정과 우리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애잔한 시선 사이에 지난 30년 세월의 슬픔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그림을 그린 학생은 그래도 뭔가 더 할 말이 있어서 오금을 박듯이 뒤 배경에 몇 마디를 써 놓았다. 그것이 오히려 사족이 되었다.
<5.18기념 제5회 서울청소년대회 그림 부문 대상 작품을 오월광주를 대표하는 화가 홍성담
님이 바라보고 있다. / 수상작들은 5.18당시 실제 사진들과 함께 5.18 제29주년기념 서울행사장(5월1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전시된다. - 사진 정경자 >
한 거대한 소년이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깊은 생각에 들어있는 그림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푸른 하늘엔 하얀 조각구름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고 현실의 바닥엔 오늘을 살아가는 호흡이 숨가쁘다. 오른쪽 발엔 이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지난한 역사가 아로새겨진 천이 휘감겨 있고, ‘대한민국’의 국가주의가 새겨진 천이 왼쪽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림을 그린 이의 자기 고민이 진지하게 펼쳐진다.
오늘날 이런 고민이 어찌 그의 것으로만 그칠까. 바로 우리 모두의 고민이고 오늘날 숨막히는 현실에 대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전통적인 수채화 기법이되 구성은 한없이 자유스럽다. 그 자유로운 구성으로 자신의 옥죄는 현실을 더욱 절묘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실한 붓질 한 땀 한 땀마다 진솔한 감정이 배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술이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고 이런 감동은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올해 29주년 오월을 맞는 나는 이 청소년들이 그린 그림의 기억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에 희망의 씨가 묻어졌다. 그리고 이 벅찬 가슴으로 어떤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는 법 없이 살아갈 것이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려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