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2008년/글]최우수상 - 강다은(진명여고3)
최우수상·서울시교육감상
사랑을 전하는 방송
강다은 진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안녕하세요, 사랑을 전하는 방송, 라디오 손자국의 DJ 김은정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네요.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은 오늘을 어떤 날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는 제 생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일이라 더 가슴이 아픈 날 이기도 하네요. 제가 80년생인데, 1980년 5월 18일 제가 응애응애 울면서 서울 어딘가에서 태어났던 날, 광주에서는 광주민주화 운동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생일이 되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좀 그래요. 하하, 제가 태어난 날 광주에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을 걸 생각하니까 슬프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사연 하나 읽어드릴게요. 제가 오늘 무슨 사연을 읽을까 하고 게시판을 보다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사연 하나를 발견했거든요. 서울 양천구에 사시는 황유경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은정씨. 저는 서울 양천구에 사는 황유경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5월 18일이에요. 은정씨 생일이시기도 하지만……오늘은, 제 친정아버지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제 고향은 광주고, 제 아버지는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 때 돌아가셨어요. 제가 세 살 때여서 실은 저는 아버지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아버지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요. 오늘 보내는 사연은 저희 시아버님께 드리는 사연이에요. 저희 남편도 고향이 광주에요. 대학교 때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죠. 그리고…… 저희 시아버님께서는 흔히 말하는 계엄군 이셨답니다. 저는, 원수일지도 모르는 분의 아들과 결혼을 했어요. 대학교 때 남편을 처음 만나고 삼 년이라는 시간을 연애하다가 정말로 결혼을 허락을 받고 싶어서 부모님을 찾아뵀는데 그때 알았죠. 시아버님이 계엄군이시라는 사실을. 저는 그때 집에서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몰라요. 제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은데,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게 되다니. 그런 생각을 했었죠. ‘원해서였든, 원하지 않아서였든 시아버님이 계엄군이셨다면 내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분의 자식과 사랑을 하게 되었고 평생을 약속하고 싶어 하다니……정말 불효자식이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근데, 그때 제 친정어머니가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깍지를 껴서 손가락 하나하나 맞닿은 채로 저를 어찌나 꼭 붙잡으시던지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유경아, 지난일은 지난일일 뿐이야. 지난 일에 얽매이면 너도 행복할 수 없고 그 이후도 행복할 수 없어.’ 라고 말씀하셨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결혼을 하기로. 시아버님의 허락을 받는 것도 만만치 않았어요. 절대 저와 결혼을 시키지 않으실 거라고 불같이 말씀하셨거든요. 저한테 미안해서라도 그렇게는 못한다고. 제발 결혼을 포기해달라고. 그런데도 저는 제 남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에 골인 했죠. 지금은 시아버님과 한 지붕아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저는 5월 18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덜컹해요. 저희 아버님 방에 달력에 5월 18일엔 항상 검정색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어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라고 신년달력이 들어오면 늘 오늘에 동그라미를 그리시죠. 5월 18일에 저희 시아버님은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시고, 그저 방에만 앉아계십니다. 외출도 하지 않으시죠. 은정씨, 저는 말이에요 다 용서했답니다. 어쩌면 정말 저희 시아버님이 저희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하셨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시아버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원망하고, 원망하면 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지내야만 할지도 몰라요. 결혼식 전 날 저희 시아버님께서는 제게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정말 미안하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용서해달라고. 눈물을 흘리시는 시아버님의 손을 붙잡고 저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울면서도 제 어머니가 제게 그래주셨던 것처럼 손을 꼭 붙잡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지금도 후회가 되네요.
저는 제 시아버님을 아버지같이 생각해요. 아버지 없이 자란 제게 시아버님은 아버지 그 이상이셨거든요. 저는 시아버님을 용서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죠. 80년 5월 18일에 있었던 일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양쪽 끝에 서있던 저희 가족과 남편의 가족은 한걸음씩 다가와서 서로를 가까이에서 마주보게 되었어요. 제게는 원수일지도 몰랐던 저 끝 편의 사람이 이제는 저와 함께 서있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서로 모른 척 하지 말고 잘못을 했으면 사죄를 하고 그걸 너그럽게 용서 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은정씨가 이 사연을 읽어주실 때 쯤엔 전 아마 시아버님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깍지 끼고 손을 꼭 붙잡아드리고 있을 겁니다. 덜덜 떨면서 방아쇠를 당기셨을 그 손을 잡아 드릴겁니다. 그리고 방송을 같이 듣고 있겠죠. 저는 제 시아버님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시아버님도 그러실 거라 믿어요. 내년 5월 18일엔 가족 다같이 가족나들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5월 18일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날보다는 용서의 마음을 가득 담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울 양천구의 황유경님의 사연이었습니다. 참 긴 사연이라 읽는데 목이 너무 아픈데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 중에 유경씨 아버님 같으신 분도 계실 거고, 아니면 유경씨 같은 분도 계실 테죠. 그리고 저처럼 겪어보지 않은 시절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분도 있으실 테고요. 중요한건 누구든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 같아요. 이 날의 의미를 말이죠. 5월 18일을 잊지는 않되,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이 날을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요? 유경씨 아버님도 내년부터는 유경씨랑 같이 손을 꼭 맞잡고 하루를 보내시길 바래요. 그럼 저희는 광고 듣고 잠시 후 2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