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2008년/글]우수상 - 안신정(진명여고2)
우수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상
끝까지 지켜지고 길이 남아야할 5월의 뜨거운 정신
안신정 진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5.18 민중항쟁,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그 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닌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5월 18일에 열리는 작고 조촐한 민중 항쟁 기념식에서 묵념을 하곤 했었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민중항쟁? 이런 말은 잘 몰랐다. 그저 그 사건에 관한 비디오를 보고 선생님들이 쉽게 설명해주시는 말을 듣고 그 사건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위인전에서 볼 수 있는 대단한 분들이고, 그분들은 훌륭한 분들이시니까 묵념을 하는 거구나...... 하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 관련 비디오를 보면서 나에게도 민주 열사들의 뜨거운 정신이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5.18에 대해 가슴으로 느껴갔다.
교과서에 5.18에 관한 글이 나오고, 수업시간에 배운 뒤에야, 나는 5월 민중항쟁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교과서로 그저 글로만 읽는 것으로는 어릴 때 느꼈던 그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쯤 난 처음 5.18 묘역을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작은 전시실의 사진을 보면서, 내 가슴엔 다시 한번 그 정체모를 무엇인가가 새겨졌다. 그리고 기념탑 앞에서의 묵념... 매년마다 우리학교는 소풍으로 그곳을 간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갈 때마다 내 가슴엔 민중항쟁 열사들의 정신이 또렷하게 박혔다. 이렇게 내가 조금씩 민중항쟁에 대해 알아갈 즈음, 나는 서울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전학 와서 맞는 5월 18일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학교에서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관련 자료조차 나눠주지 않았다. 그리고 조촐한 묵념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약간 어리둥절하다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저.. 5월 18일인데,, 기념식 같은거 안해??” 친구들의 대답은 정말 기절초풍이었다. “그런거 왜하는데?” “오늘 5.18 기념일이잖아...” “그게뭔데?” 맙소사! 정말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책에도 나오는 그 사건을, 그리고 그때부터 그 사건을 몸으로 느껴왔던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가지고 교과서를 뒤적거리던 나는 곧 이해가 갔다. 5.18 항쟁은 현대사 부분이기 때문에 교과서 거의 뒷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그 뒤쪽 수업은 학기말이라 거의 하지 않는다. 내 국사책 역시 그 부분은 정말 깨끗하다. 하지만 그런 사건도 모른 채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이다’라고 달달달 외우는 것은 그저 말로만 외우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 과연 그런 것 들을 온 몸, 가슴으로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나중에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열사들의 나이가 됐을 즈음 과연 그 정신을 본받아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전학와서 처음 5월 18일을 지내고 난 뒤, 친구들이 5.18이 뭔데? 하고 물어보는 순간 잘 대답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항상 5.18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5.18 민중 항쟁에 대해 찾아보고, 알아보았다.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조금씩 더 알아갈 수록 민주열사들의 정신과 그들이 이룩한 작은 승리는 하나의 큰 의미가 되어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보고, 내가 그 정신을 가지고 현재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도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다.
그날의 작은 승리, 그리고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 흘린 민중항쟁 열사들의 땀과 피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불의에 대해 한마음으로 뭉쳐 항전했던 민중들의 모습은,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졌던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항상 불의 앞에서 타협만 해왔던 나에게 저항까지는 아니지만,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치로만 여겼던 인권과 참정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민이라면 누구든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인권, 그리고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가지는 참정권이 불과 20년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당연한 권리를 갖기 위해 그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열사들의 피 속에 깃든 민주정신에 대한 열망을 느끼면서, 나에게 주어진 그 당연하다고만 여겨졌던 그 권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이렇게 5.18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본 후, 내가 이 정신을 본받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린 결론이 있다. 바로 민중항쟁의 정신을 본받아 실천한다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항상 무언가 큰 행사에 참여하고, 훌륭한 글쓰기를 해서 내는 것 이런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1980년 민중항쟁이 가져다 준 ‘인권’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 해 주며 사랑하는 것 또한 민주정신에 대한 작은 실천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5.18이 무엇인지, 민중정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설명 해 주면서 항쟁의 뜨거운 민주정신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민주열사들의 피땀이 서린 언젠가는 나에게 주어질 투표권을 소중이 행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마음깊이 5월 항쟁의 함성과 승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기억 속에서 5월 열사들의 죽음이, 그들이 외쳤던 ‘민주주의 만세’ 라는 뜨거운 함성이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세대에서 해야할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는 나 혼자 시작한 이런 작은 실천들이 하나씩 하나씩 더해져서 큰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실천을 통해 그날의 작은 승리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그날의 뜨거웠던 민중열사들의 정신에 한없이 벅차오른 가슴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우리가 그 뜨거운 정신을 끝까지 지켜낼 것을 약속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