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2014년/글]최우수상 - 이진주(연수여고2)
회고 : 9일간의 기록
연수여고 2학년 이진주
한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병실의 침대에 누워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을 넓게 쳐다본다. 노인은 눈을 감고, 뜨는 것조차 힘겨운지 간신히 꿈뻑이는 눈의 시선을 눈물이 맺힌 그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꼭 잡은 손으로 돌린다. 힘겹게 청년에게 손짓하자, 다급하게 노인의 입가의 귀를 가져간 청년에게 무언가 작게 속삭이고는 입을 닫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노인을 쳐다보는 청년에게 노인은 힘없이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균일하게 흘러가는 심장박동을 알려주는 기계소리가 얼마 가지 않아 삐,하고 길게 늘어진다.
‘너를…. 죄인의 아들로 태어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노인이 그의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노인이 그렇게 숨을 거둔지 일주일정도 흘렀을까, 청년이 노인이 사용하던 방으로 추정되는 곳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래 전부터 노인 곁에서 줄곧 떨어지지 않던 낡은 서랍장. 청년이 어렸을 적부터 병원에 들어가기까지, 늘 자상하기만 하던 아버지는 저 낡은 서랍장에 다가기만 하면 늘 화를 내셨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는 나날까지도 단 한번 제대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 도달하자 청년은 조심스럽게 서랍장을 열어본다. 하지만, 제 아버지가 그렇게 단호히 지키던 서랍장 안에는 낡고 모서리가 닳아버린 갈색 빛의 얇은 노트 한 권과 그 위에 살포시 군복을 입은 어떤 청년의 사진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사진속에서 군인인 청년은 노인의 아들과 꽤나 닮아있었고, 군복에는 조그맣게 ‘한병욱’이라는 이름 세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노트를 들어올린 청년은 겉표지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었다. 그리고 제목을 시작으로 노트에 적혀있는 글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넣기 시작한다.
‘회고: 9일간의 기록 (1980. 05. 18 ~ 1980. 05. 27)’
“너는 나라를 빛내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인자한 웃음을 보이시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말을 늘상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자라온 나는, 어느새 아버지보다 훌쩍 커버려 한 장정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때 즈음, 나는 자원입대하여 군에서 총을 들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진정한 ‘한병욱(韓炳煜)’이 되기 위해. 남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소싯적부터 동경해온 ‘군인’이라는 직업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 생각을 넘어선 범위 그 위의 일이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그것을 열심히 버티고 견디어 나가던 중이었다. 나라의 안전을 위해, 정의를 지키기위해, 나는 몸바쳐 싸우겠다 맹세하였기 때문에, 나라를 지켜내어 빛내는 군에 소속된 한사람으로써,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음으로 ‘힘들다’라는 감정에 대한 보상으로는 충분하였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지금까지도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혐오감. 그리고 나에게 그러한 일을 시킨 나라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어졌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일을 지울 수 없을 뿐더러 아주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지워버리지 못한다면, 여기에 옮겨두어서라도 조금이나마 짐을 덜어버리고 싶다. 지독한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티끌만큼이라도 여기에 묶어놓고자, 나는 써나간다.
1980. 05. 18, 아마도 내가 나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에 대하여 부정적 사고를 가지게 된 시작점이었다. 내가 속한 부대는 전남·광주에 소속되었었고,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터지자마자 근접해있던 부대 중 하나로써 투입 명령을 받은 듯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 상세한 상황 알지도 못한채,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기 위해 이동한 날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는 실질적으로 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광주로 이동하고, 부대가 머무를 곳에서 숙식을 준비하고 여독을 풀었다. 그것이 다였다. 나는 당시 처음 투입된다는 마음에, 정말로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에 충분히 설레어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투입’이라는 그 자체가 위태롭다는 의미인지도 모르는 철없는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만약 광주가 나의 첫 투입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이렇게 죄의식과 나 자신을 향한 혐오감에 사묻혀있었을까.’라는, 지극히 후회가득한 생각이지만.
1980. 05. 19, 해가 뜨기 직전인 새벽부터 우리 부대 뿐 아니라 전남에 있는 거의 모든 부대가 잔뜩 각을 세운 채 만남을 가졌다. 긴장감이 서린 가운데, 위관장교가 단상위로 올라가 시위의 탄압을 위한 작전설명을 가졌다. 하지만 내가 들은 위관장교의 말은 내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겠다. 현재의 헌법상, 각하의 사상에 반(反)하는 행위는 무조건적인 반역이다! 그러므로 현재 광주에 있는 시위대에 속한 자와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모두는 비논리적 사상에 매료되어있는 빨갱이들에 불과하다! 총기류의 발포를 허가하니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시위대와 동조되는 사람들을 진압하도록 해라!”
위관장교의 말이 있고나서 잠시 부대들 안에서는 술렁임이 일었다. 위관장교는 광주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일가친척들을 비롯한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공격하라는 말로 들리는 군인들은 혼란스러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얼어붙어 위관장교를 쳐다볼 뿐이었다. 약간의 술렁임에 위관장교는 예상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소위계급 이하의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실탄은 20일인 내일부터 지급된다! 또한 오늘은 시위대를 향한 과도한 진압은 하지 않는다. 단지 시위 중지를 권고할 것이다.”
장교가 말을 끝맺음하자 웅성임이 조금은 잦아들음과 동시에, 전 부대는 담당 구역으로 향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구역에서는 군인이 투입이 된다는 소식을 듣자 전일보다 더 격한 시위가 일어났다. 내가 맡았던 21구역은 이백여 명 남짓의 사람들이 구청앞에 모여 하나의 구호만을 끊임없이 외치었다. 그 구호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사회를 돌려달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앞으로 서 인간방어벽을 치는 우리들을 보자 격분하여 달려드는 그들을 몸으로 막아 버텨내었다. 하지만 화가 오를 대로 올라버린 시민들은 사력을 다해 구청을 점령을 시도하였다. 아마도 중대장이 우리에게 폭력진압을 허용한 것은, 시민들이 우리들의 수보다 조금 많아서, 우리들은 점차 밀리는 상황에 처하는 도중이었을 것이다.
“전 장병들에게 명령한다!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시위대를 내쫓아라!”
그 소리를 듣고도 머뭇거리는 장병들에게 중대장은 한번 더 소리치며 행동을 재촉했고, 여기 저기서 시민들의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나 또한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팔을 한 번 힘껏 휘두르면 내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지는 시민들. 처음에 사람을 때린다는 것, 그것이 적군이 아니라 내가 지키는 곳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움이 들끓었다. 하지만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내자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그저 그런, 마음이 기계처럼 무감각하게 나를 지배했다. 폭력으로 물들어버린, 어느새 쾌락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불안해져버렸던 나의 감정. 시위대는 하나 둘씩 쓰러지더니 어느새 절반의 수가 그렇게 된 듯 하였다. 다른 시민들은 주위에 널부러진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지레 겁먹고는 슬금슬금 사라지는 듯 했다. 그날의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저 내 생각에는, 나라는 존재가 폭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듯 싶었다. 아마도 그렇게 빨리 중독된 이유는, 정해진 틀에서 살아온 나에게 억압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헤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1980. 05. 20, 장교의 말처럼 부대에는 탄약과 여러 총들이 공급되었다. 대부분 어제의 진압으로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었다. 탄약 스무발, 최루탄 한 개, 그리고 한 자루의 총. 전 날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나는 손 위에 가만히 얹어 그저 넌지시 바라만보다 동료의 재촉에 장비하였다. 어제 내가 서있던 그 장소, 다시 한 번 나는,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그곳에 섰다. 그 자리엔 전날처럼 시위대도 자리를 지켰다. 달라진 것이라면 시위대는 전보단 수가 줄은 것 같았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아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우리에게 주저없이 달려들었다.
“시위대, 아니 저 역적들에게 발포를 허가한다! 저 반역자들을 처단해라!”
중대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 주위의 동료들은 멈칫하다 싶더니 이내 철컥, 소리내며 장전했다. 탕,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첫발의 총성이 울림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전보다 더 격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시민들이 눈에 보였더라면 아마 더 끔찍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그저 한 마리의 미친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장전하고 발사했다. 내게 가끔 좀비처럼 매달려오는 사람이 있거든 총으로 그를 휘갈겼다. 그리고 그는 항상 풀썩하고 쓰러졌다. 나는 그들을 벌레보듯 쳐다보며 그들의 머리를 담뱃불 지지듯 꾹, 눌러 밟았다.
청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점점 커지는 눈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르게 넘겨나갔다. 그리고, 그 마지막 전 페이지까지 청년의 아버지는 주욱 그 같은 일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어느 날은 더더욱 극악무도했고, 어느 날은 더욱 사람들을 비참히 만들었다. 어렸기에, 무지했기에, 그저 복종했기에, 그저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시의 나에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적응되었으며, 그래서 어느 때에는 즐겁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미쳐있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자주 회상하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웠고, 피하고 싶었다. 그것은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진행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느 죄인과 다르지 않다.
“피고 한병욱. 피고는 현재 자신이 속세에서 어떠한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재판장답게, 냉랭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재판관이 피고, 병욱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선 병욱은 긴장된다는 듯, 눈높이를 올려 재판관을 잠깐 심란한 눈초리로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결심한 듯 굳은 눈빛을 빛낸다. 한숨을 힘껏 들이키더니 토해낸 병욱의 말은 그가 살아왔던 세월 동안 몇 번 내어보지 못하였던 편안한 목소리였다.
“저는…. 저조차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