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2014년/글]우수상 - 이재웅(용인외대부고3)
<상승기(上昇記)>
용인외대부고 3학년 이재웅
1.
“김씨가 이번에 지상상승신청에 당첨되었다는데.”
“올라갈 사람은 결국 올라가는구만. 그렇게 간절히도 원하더니. 어제도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
“다행이네, 다행이야. 내 마누라 안부 좀 전해달라고 해야겠는걸.”
“글쎄⋯ 나도 올라갔다 와서 알고 있네만⋯ 김씨는 아마 실망만 하지 않을까 걱정되네. 일단 두고 봐야겠군.”
2.
면접장은 상당히 엄숙했다. 앞에는 염라대왕이, 양 옆에는 보좌관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한참동안 김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염라대왕이 서류를 촤락촤락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사망 1980년 5월 27일, 전생 주민등록번호 55XXXX-1XXXXXX, 김OO씨 본인 맞습니까?”
“예, 분명히 저 맞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렇게 우리나라 말을 잘 할 줄이야, 그리고, 어떻게 내 주민등록번호도 알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신이 틀림없어, 김씨는 생각했다.
“사인이 총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적혀있군요. 뭔가 사연이 많으신 듯한데, 본인이 지상으로 상승(上昇)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저… 저는 마누라도 이미 저와 같이 지하에 있고 아들놈한테 찾아가서 내가 니 아비다, 하고 혼란을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그렇게 온몸을 바치고 나서,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저도 그게 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게 어떻게 수호가 되었을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이 말씀이군요. 상당히 독특한데요.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김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은 것만 같이 그제서야 한숨을 푹, 쉬었다.
3.
김OO 귀하
축하합니다. 귀하께서는 제 960회 지상상승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가까운 동사무소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상상승추첨관리위원회 (인)
김씨는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바로 제 960회 지상상승 행사를 맞이했다. 절차는 별로 복잡하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자신의 몸으로 쓸 아바타를 선택하고, 십만 원 가량 되는 금액을 받은 뒤 상승 위치를 선정했다. 사람들은 남의 몸을 빌려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그 날 자신이 죽어갔던 전남도청을 선택했다. 나에게 아름다운 죽음을 선사한 공간, 그 곳은 얼마나 많이 변해있을까. 아니, 그 곳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희생으로 세상은 얼마나 많이 바뀌어있을까……. 그는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를 향해 천천히 상승했다.
4.
“전남도청은 2005년에 전라남도 무안군으로 이전되었구요, 이 곳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 관리하고 있습니다.”
여직원의 목소리는 근대문화유산을 보호, 관리하는 사람에 걸맞지 않게 다분히 사무적이었다. 몇 만 번이나 반복했을 기계적인 멘트, 아무런 감동도 찾을 수 없는 표정. 김씨는 적잖은 실망감에 빠졌다.
“아가씨, 그… 이 곳에서 도청을 보호했던 그 시민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소?”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은 5.18 국립 묘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북구 운정동에 있으니까, 한 30분이면 가실 수 있을 거에요.”
여직원은 뭘 묻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광주 여행 가이드 책자를 내주었다. 김씨는 너무나도 화끈거려서, 조금만 더 있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황급히 인사하고 도청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5.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역시 금남로밖에 없었다. 며칠간의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었던 공간, 택시와 버스가 모여들고, 수많은 시민들이 걸으면서 단 1000원도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시민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던 길……. 그 길의 중심에 김씨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죽은 가슴이라도 쿵쾅쿵쾅 살아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금남로는 상당히 번화한 거리였다. 분수에 물이 가득 차 피어오르고, 자동차와 버스가 그 옆을 쌩쌩 지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젊은이들도 한창 갖춰 입고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광주가 이렇게 자유로워졌구나. 그리고 이 자유는 우리, 나와 정씨와 박씨와 최씨와… 수많은 익명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구나. 김씨의 심장은 다시 한 번 뛰기 시작했다.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그이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런데 이 달콤한 자유를 맛보고 있는 자들은 우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김씨는 아까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에서 근무하고 있던 여직원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그는 누구보다도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도청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일말의 감동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볼 수 있던 것은 오직 먹고 사는 것의 힘듦, 그 뿐이었다. 모두 먹고 사느라 민주화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래, 아마 그 여직원만 잠시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거겠지. 어떻게 이루어낸 민주화인데 말이야.
불안감을 마음속으로 달래고 있던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금남로 공원’의 비석이었다. 수많은 김씨와 정씨와 박씨가 피 흘렸던 그 공간에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평화로운 공원이었다.
김씨는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도심 속의 공원 치고는 나무도 많고, 꽃도 많아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잘거리고, 나비는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꽃의 수분을 돕고 있었다. 자유, 평화, 안정, 즐거움… 모두 그들이 추구했던 민주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독재 세력은 마침내 물러가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가 보장되는 곳. 그 곳이 마침내 대한민국이 되었으며 이렇게 공원 하나 차릴 정도로 여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김씨는 평화로운 공원 속에서도 가슴은 불안감 내지는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를 기억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근대문화유산, 풍요롭고 자유로운 현대 사회의 모습, 꽃과 사랑과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금남로 공원 모두 그들이 이루어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우리를 기억하는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모두가 우리의 존재를 잊어버렸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죽음을 바친 것인가?
김씨는 허망함에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쉬며, 그래도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겠지, 하는 조그만 희망을 갖고 옆에 앉은 학생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저기 학생…….”
“아, 네, 네?”
휴대전화인지 뭔지 반짝거리는 무언가에 자꾸만 손을 두들기는 그의 손이 예사롭지 않았고, 그의 말에 대꾸하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 도청의 여직원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학생……. 여기서 말이야, 1980년 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있나?”
“저어……. 1980년이면 제가 태어나기 전이라 잘 모르겠는데요. 5·18인가? 뭔가 있다고는 알고 있는데 근데 아직 거기까지는 학교에서 배우지를 않아서요.”
“그……. 그런 걸 꼭 학교에서 배워야만 아나?”
“한국사보다 중요한 과목이 많아서요. 신경 쓸 시간이 거의 없어요.”
김씨는 드디어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다.
6.
김씨는 마지막으로 여직원이 말해주었던 5.18 국립묘지로 향했다.
김씨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를 기억해줄 것만 같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기억해줄 거라고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나 보다. 자유의 대가를 김씨가 치뤘을 뿐 지금의 자유가 선사하는 달콤함은 그들로 하여금 김씨의 희생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김씨는 자신의 묘비를 찾았다. 김OO. 1980년 5월 27일 사망.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은 아마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린 지금의 자신일 뿐일 것이다. 김씨는 묘비에 막걸리를 부었다. 그래, 찾지도 못한 시신, 자네도 근심이 많지? 난 자네를 이해하네. 절이라도 한 번 받겠나?
김씨는 묘비를 앞에 두고 절을 했다. 절을 하며 엎드린 김씨는 눈물을 한 두 방울 떨어뜨리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엎드려 조아린 김씨는 좀체 일어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