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2014년/글]우수상 - 이상은(연수여고1)
가리워진 길
연수여고 1학년 이상은
끼이이익- 작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멈춰섰다.
사람 서너명 정도 앉을까 싶은 긴 의자 빼고는 표지판도,사람도,심지어는 집들도 보이지 않는다,
신발 앞코가 조금 까매진 운동화를 신은 현우가 등산가방으로 써도 될법한 큰 배낭을 매고 내려섰다.
‘여긴 하나도 변한게 없구나’ 5년만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의 깨진 나무조각까지 그대로인걸 보니
참, 이것도 놀랄 일이다 싶었다. 간간히 의무적인 안부전화를 드리긴 하였으나 항상 별 말씀 없으신 아버지께서 3일전에 집에 좀 들렀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내심 걱정이 되어 온 것이다. 아무리 변변히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하고 내세울것 하나 없는 아들이지만 부모 말을 거역하는 불효자까지는 되기 싫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그것도 아주 변두리에 있는 이곳까지 오려면 꼬박 대여섯 시간을 내달려야 하지만 기꺼이 하루 정도는.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을까지 걸으면서 현우는 어렴풋이 옛 추억들을 끄집어냈다.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가야하는 현우를 위해 어머니는 늘 부산스러웠다.
이 조그마한 마을,집도 3가구밖에 없는 이 마을에 학교가 있을리 만무했다. 때문에 현우는 시내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정작 당사자는 느긋했으나 어머니만이 입술을 앙다물고 가방이며,학용품이며 바쁘게 챙겼다.
현우는 어머니가 아침상을 차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항상 일어나면 뚝딱 차려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현우는 20살이 되어 서울로 상경하기 전까지 밥은 알아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밥을 먹는 동안 가방을 챙기고 밥을 다 먹으면 옷을 입혀주고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현우가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면 어머니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그 짓을 십년 넘게 했으니 지겨울 법도 했으나 어머니는 묵묵히 해냈다. 배워야 한다는게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견뎌낼 수가 없다는게 어머니의 말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으나 어머니가 그렇다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이밖에도 여름방학이면 어머니와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던 일, 겨울에는 아랫목에서 어머니가 가져다준 튼실한 고구마와 동치미를 먹으며 만화책을 보던 일 등. 되짚어보면, 이곳에서의 기억은 현우에겐 어머니,그 자체였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항상 요란한 소리를 내는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가 이불을 전깃줄을 지지대 삼아 널고 계셨다. 전깃줄이 무거운 이불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을까 괜히 걱정이 되었다. 못본사이 아버지는 더 야위신 것 같아 보였다. 원래도 건장한 체격은 아니었으나 항상 올곧고 강단있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짐을 어깨로 짊어진 힘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늘 가장 존경하는 사람 칸에 자신있게 우리 아버지라고 썼던 과거가 모래성처럼 없어져 버릴까 두려워 재빨리 아버지.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이불을 널다말고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항상 나를 볼때 보는 그표정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자 훈훈함이 온몸을 감쌌다. 긴장감이 풀어지듯 순간 온몸이 나른해졌다. 서울살이는 그에게 적지않은 스트레스였던 것이다.순간,본인이 온 이유가 생각났다. “어머니는요?”어머니 안부를 묻자 아버지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많이 안 좋으신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원체 몸이 약한데다 극심한 우울증까지 겹쳐 하루종일 누워만계신지는 십년이 다 되간다. 그래도 가끔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때는 밝은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번 달 넘기기 힘들것 같다 하더라.그래서 부른거야. 마지막이라도 네가 있어야지 후회없이 가지.”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힘겨운 듯 입술이 일그러졌다. 사탕을 뺏긴 어린아이마냥.40년을 붙어산 사람을 보내는 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려운 일이다. 1975년 봄,20살의 어머니와 25살의 아버지는 결혼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첫 발령지였던 전라도 광주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가난한 집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그래서 공장에 취직했으나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 야학을 다녔다. 아버지는 형편상 학교는 다닐 수 없지만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끔씩 야학에 들러 책을 읽어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공장 일을 마치고 야학에 오는 어머니에게 반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청혼했고, 어머니는 거절했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선 공장이라도 가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게 첫 번째 이유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자신 같은 여자와 결혼해선 안된다는게 또다른 이유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빠를 찾아가 직접 허락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의 오빠는 어머니에게 “내 학비는 내가 벌수 있어. 그건 내 인생이니까.너도 이제 네 인생을 살아. 그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공부도 계속해.”라며 결혼을 허락했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린 후 5년 뒤인 1980년 3월 18일,현우가 태어났고 3년뒤 이곳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계속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현우가 아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의 전부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런 젊음이 있었는지 도무지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엄마의 마지막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우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현우는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 아담하고 포근한 방,어머니가 지난 10년간 벗어나지 못한 그 곳.문고리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죽음이 코앞에 있다 생각하니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느낌이다. 문을 열자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보니 어머니는 전혀 아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곁에 다가가 손을 잡자 어머니는 가만히 눈을 떴다.
얼굴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활짝 웃었다. “아들 왔어.”하자 어머니는 말없이 손을 쓰다듬었다. 왜이렇게 늦었냐며 혼내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하련만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마냥 반가운듯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자 후회가 밀려왔다. 어머니는 또래보다 더 늙어 보였다. 더 작아 보였고 머리숱도 많지 않았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다 하지만 현우는 마음이 쓰였다. 본인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된것같아서.
한시간 정도의 반가운 재회를 마치고 어머니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서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새 대통령 취임 소식이었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아버지가 역정을 내셨다. “그딴 뉴스는 뭐하러 보냐.당장 꺼.” 왜그렇게 화를 내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왜요.하고 되묻자 아버지는 “대통령이라는 것들을 다 똑같은 거다. 앞에서는 국민을 위한다 하지만 뒤로는 자기욕심 챙기기 바쁘다고.”라며 다시 한번 벌컥 화를 내셨다. “인간이라는 건 다 똑같죠. 뭐,대통령은 사람 아닌가?”라며 맞서자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냐!그 일 때문에 우리집이 이렇게 된거고, 네 어머니도 저렇게 된건데! 너도 어머니 없었으면 죽은 목숨..” “아씨,또 그얘기예요? 그렇게 우려먹으려고 그때 나 살렸어요? 그만 좀 해요!그 얘기 이제 진절머리 나요!”
집안 분위기는 그렇게 엉망이 되버렸다. 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나를 별사람 보듯 했고,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머쓱해진 나는 집을 나와 마당으로 향했다. 괜히 왔단 생각에 순간 짜증이 났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여자친구인 지민의 부재중 전화가 눈에 띄었다. 지민은 2년전부터 만나오던 여자였다. 최근 결혼 얘기를 넌지시 꺼내더니 미적지근한 반응에 불만인 모양이었다. 사실 현우는 결혼이 부담스러웠다. 지민이 싫은 건 아니었으나 직장도 그만둔지 5개월이 다 되가는 마당에 자기 혼자서도 살기 힘든데 하나의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지민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지민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본인도 언뜻 들은 것이어서 잘은 모르지만 직급도 꽤나 높은 모양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지민의 아버지는 군복무중 이곳에서 큰 공을 세우고 그 뒤로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현우는 그것이 불편했다. 그 얘기를 했을 때의 아버지의 반응도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결혼을 하는 것도 왠지 찜찜했다.
밖에서 집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가 보니 모두 잠이 들은 듯, 집안은 어두웠고 정적이 흘렀다.
예전에 이집에 살 적 쓰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15년이 흘렀지만 방의 구조는 물론, 쓰던 물건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누가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떴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어머니였다. 몸을 일으키기도 힘겨워하는 어머니가 왜 오셨는지 궁금해져 입을 열었다.
“몸도 불편하신데 안주무시고 왜 오셨어요?” 어머니는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문득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 죄송스러워진 현우가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아까 제가 한 얘기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예요.” 어머니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민망해진 현우가 주무세요.하고 등돌려 눕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1956년에 태어났다. 부유하진 않았어도 따뜻한 집이었어. 그렇게 계속 살았으면 좋으련만. 4년 뒤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안이 갑자기 기울었지.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공부를 유달리 잘했던 오빠에게 기대를 걸었지. 아직도 기억이나.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너는 오빠 뒷바라지 잘해야 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엄마 죽더라도 오빠 잘 챙기고. 나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할수 없었어. 괜한 말을 꺼냈다가 가끔 어머니가 사오시던 통닭을 얻어 먹지 못할까봐. 오빠는 내 마음을 눈치챘던지 다 쓴 문제집 같은 걸 깨끗이 지워서 내게 주곤 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기 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정말 오빠와 나만 남았었다.
어머니 말대로 오빠 뒷바라지 하려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장에서 일했었다. 그 쥐꼬리만한 월급 어디다 쓰겠냐만은 악착같이 모아 전부 오빠에게 줬다. 내가 못한 공부 오빠가 해주길 바랬고. 그런데 오빠는 사람 사는거에 더 마음이 갔던 모양인지 자꾸 친구들과 어울려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더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그저 배 안굶고 걱정없이 사는 거였지만 오빠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항상 말하곤 했어. 이 나라는 바뀌어야 해. 그래야 내 자식들이 정말 좋은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어.
그러러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해. 밤마다 오빠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말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내가 너희 아버지와 결혼하고, 너를 낳기까지는 참 행복했었다. 그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였을 거야. 난 항상 꿈이 평범하게 사는 거였단다.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하게 살다 죽는 거.
근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지 교회 잘 나가지 않아 하느님이 노하신건지 알 수 없다만 남편이란 사람도 민주화인지 뭔지에 빠져 맨날 시위에 모임에 심지어 너를 낳을때도 잠깐 들러 얼굴만 보고는 금방 가더라. 그래도 나는 너희 아버지 믿었다. 똑똑한 사람인데 설마 나쁜 짓 하고 다닐까 싶어서. 내가 본 사람 중 두 번째로 똑똑한 사람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이상한 소문이 나더라고. 대통령이란 사람이 군인들 데려와 광주 사람들 다 죽이라 했다고. 말 안듣는 사람들 다 때리고 감옥에 처넣는다고.
이게 뭔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오빠가 항상 얘기하던 그거였어. 남편이 미쳐있는 그것.
순간 겁이 확 났어. 묻고 싶었어. 누구에게든. 왜 이래야 하는 건지.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감시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왜 목숨을 걸어야 하는건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전부 미친 것 같았어.
그렇게 살얼음판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우리 앞집에 살던 여학생이 피주검이 돼서는 군인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더라고.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비릿한 피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보였다. 사람들 군인들 한데 엉클어져 분간이 잘 안됐지만 하나는 보였다. 무시무시한 방망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그 천하장사도 한번에 제압할만한 방망이로 사람들을 때리고 있더라고.
순간, 오빠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남편도 생각이 났어. 내 사람들은 무사한건지. 내 인생에 유일하게 나를 위해주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사한건지. 나도 미쳤는지 두 달 된 젖먹이인 너를 데리고 사람들을 헤치며 그들을 찾았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정신을 차리니 나는 혼자 있었다. 내 뒤엔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자주 들르던 과일가게 아저씨도 보이고 지나가다 자주 마주치던 고등학생들도 보이고. 그리고 내 앞엔 군인들이 보였다.
아무 감정 없는 듯한 표정들. 아무튼 여기에 없구나 싶어 안심하며 돌아가려고 할때, 뭔가 발에 채였다.
가만 살펴보니 사람이었다. 익숙한 짱구머리. 어렸을 적 놀다 넘어져 생긴 눈썹 위 상처.
그건 우리 오빠였다. 나보고 꼭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던 오빠였다.
눈앞에 마주한 죽음이라는 건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 마냥 뭔가 걸린 것 같은데 나오질 않았다. 그냥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오빠를 쓰다듬기만 했어.
머지않아 총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뒤덮었다. 그리고 네가 보였다.
너만은 살려야 겠다 싶어 죽어라 달렸다.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비겁했다.
얼마나 한스러우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뜨고 죽은 우리 오빠를 놔두고 난 도망쳤다.
우리 오빠의 몸이 저 못된 군인들의 발에 무참히 밟히는 걸 보면서도 나는 도망쳤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문을 꼭 잠그고는 이불을 꺼내 몸을 감싸고는 벌벌 떨었어. 금방이라도 군인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와 너를 죽일까봐. 아직도 총소리는 들리는데.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리는데. 나갈 수 없었다. 내가 나가면 너는 어찌 살까 싶어서. 아니, 어쩌면 그건 핑계였을지도 몰라. 그렇게 지옥 같았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너희 아버지의 소식도 알 수 있었다. 감옥에 수감돼있다 하더라. 면회는 허용되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한달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다. 푸른색 죄수복을 입고 머쓱한 듯 웃는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 없더라.
너무 무서웠던 그때, 누군가라도 곁에 있었으면 했었을 때 왜 없었는지.
그날 감옥을 나오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내 모든 걸 버리고 살려낸 너를 보란듯이 키워 내겠다고.
미친 듯이 살았어. 돈 되는 거라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을 정도니까. 눈 감으면 생각나는 그날을 잊기 위해서라도 숨쉴 틈 없이 일했다. 3년 뒤, 너희 아버지가 석방되고 이곳으로 이사오고 네가 자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많이 무뎌지고 잊혀졌다. 네가 자라는 게 기쁨이었어. 넌 내 모든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너는 무조건 행복해야해. 네가 힘든 건 이 엄마가 가져갈 거니까. 넌 웃을 일만 있었으면 좋겠구나.
얼마전에 꿈에서 오빠를 보았다. 어렸을적 내가 멋있다고 했던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내게 손을 내밀었어.
하얀교복이 눈부셔서, 그걸 입은 오빠가 너무 부러워서 항상 잠들기 전에 소매끝을 만지작 거렸는데. 꿈에 오빠가 나온 걸 보니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야. 죽기전에 네가 와서 다행이다. 이렇게 얘기해줄수 있어서.” 어머니는 정말 멀쩡한 것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이런 변두리로 이사를 왔는지. 어머니는 떠올리기 싫었던 것이다.
그날의 기억을. 한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그 끔찍한 하루를.
그러고보니 옆집 용식 할매는 어느날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현우야,느이 어머니가 좀 이상한 것 같어. 네가 학교가고 없을 때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하루종일 앉아 있을 때도 있고, 언제 한번은 어딘가에서 총소리 같은 것이 들리니께 발작을 일으키더라고.” 그랬구나,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3일 뒤, 어머니는 죽었다. 3일동안 어머니는 다 나은 듯 걸어다니고 잘 웃었다.
아버지도 나도 그리고 어머니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아무런 티내지 않았다. 그저 지금이 행복했다.
어머니가 눈앞에 있는 게 고마웠다. 그렇게 잠이든 어머니는 미소를 띄고 다음날 눈을 뜨지 않았다.
울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이제야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까.
장례식이 치러졌고, 나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익숙한 모습, 엄마였다.
그 옆에 있는 세글자가 보였다. ‘한다혜’. 엄마였다. 나는 한번도 부르지 않은 엄마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