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2014년/글]대상 - 조혜인(김포외고3)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포외고 3학년 조혜인
오빠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저씨, 선생님, 시인님 등 여러 호칭을 생각해 봤지만 그냥 오빠라고 부를게요. 왜냐하면 2014년 오늘이 아니라 1980년 5월의 전남대학교 2학년생인 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빠를 알게 된 건, 학교 과제로 5.18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매장시편』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이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되어 종이가 누렇게 변해 있는『매장시편』에는 5.18민중항쟁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슬픈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시라는 문학 장르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5.18 민중항쟁을 학교에서도 배우고, 어른들에게도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제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시 몇 편을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편의 시 속에서 오빠의 친구들과 이웃들과 어린 청소년까지 5.18 민중항쟁으로 죽어간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시에 나오는 여고생은 교복을 입은 채 헌혈하러 가다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죽었고, 깃발 든 어린 중학생은 넷째 날 죽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날 내가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면 나 또한 교복을 입은 채 주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희미한 의식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부르다가 그냥 죽어갔겠지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무서워요. 「혹시 이런 사람을 못 보셨나요」라는 시에는 더 안타까운 주검도 있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고, 죽은 날짜도 알 수 없고, 어디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주검들 말입니다. 오빠는 이런 죽음 하나하나를 일기장에 기록하면서 “내 묵은 일기장 속에선 언제나 썩은 피 냄새 같은 악취가 났었네”라고 시에 쓰셨습니다. 일기를 쓰는 동안 오빠는 매일매일 그날을 떠올리며 얼마나 슬퍼하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오빠는 살았지만 그 엄청난 사건을 목격하고 친구들이 죽어가는 영화 같은 장면을 직접 현장에서 보았으니 지금까지 살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금남로에 서서」라는 시에는 그날 이후 오빠의 삶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싯구절이 있더군요. “피비린내 가득한 거리를 견딜 수 없어서 삼년 동안 군대생활로 메꾸었고 복학해서 일 년을 보내다가 그것마저 견디기 어려워 대흥사 암자에 숨어 지내다가 어느덧 9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를 비롯하여 그날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식을 잃고 부모형제를 잃고 어찌 마음 편히 살았겠습니까? 또한 함께 싸우다가 살아남은 사람은 끝까지 싸우다 죽은 동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라는 시에서 오빠 역시 자신을 동료의 죽음을 외면한 비겁자였다고 자책하셨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그날의 증언자가 되어 그날의 실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죄를 지은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요? 오빠 또한 『매장시편』이라는 시집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날의 일을 문학작품으로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년 있으면 나도 오빠와 같은 나이인 대학 2년생이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오빠나, 오빠의 책속에 나오는 청년들처럼 자유니, 민주니, 역사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나『매장시편』을 읽으면서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도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또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무자비한 국가의 권력에 죽어갔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살아남은 자의 고통스러운 자의식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인 하나하나는 약할지라도 개인이 모인 전체는 무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은 폭력이나 총칼로 꺾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저도 5.18 민중항쟁의 숭고한 뜻을 고민해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불과 34년 전,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죽임을 당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이고 죽었을까요? 이 글을 마치는 순간 내가 알지 못하는 괴물 같은 권력의 세계가 궁금해집니다. 꼭 그 세계에 대한 진실이 알고 싶어집니다. 제가 그날의 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매장시편』속의 수많은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장시편』-임동확 지음, 1987년 민음사에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