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모임 안내

5.18 동지 여러분 , 안녕하십니까?

설은 잘 쇠셨는지요?

햇살도 따스함을 더해가고

이젠 부는 바람에서도 봄의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집니다.

회원님들의 생활에도 밝은 기운과 힘찬 기상이

활기를 얻어가기를 기원합니다.



----- 안 내 -----



제목 : 회원 만남의 날 (임시총회)

일시 : 2007년 3월 5일 (월) 오후 7시

장소 :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교육장 (중구 정동 배재빌딩B 1층)

문의 : 02-774-5518



< 주요안건>



* 보고사항 *



- 신임회장단 출범, 회장 : 김태종

(사단법인) 5.18구속부상자회 서울.경인지부회장 겸임



- 회원명부와 연락망 등 조직 점검 업무 진행



- 회원 경조사 시,본회의 의례원칙 마련



- 서울시 비영리단체 등록명칭변경

: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 서울시 2007년 비영리민간단체 시정참여공모사업 신청



- 영문 명칭 등록

:The Seoul Memorial Society for the 5.18 People's Uprising



- 회비자동이체 결정 (현재 매월 1만원)



* 의논사항 *



- 각 위원회별 활동계획 소개와 조직 활성화의 건



- 본회의 발전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재정기반 확충의 건



- 기타



< 알 림 >



* 홈페이지 http://www.518seoul.org



* 2월 정기모임일(18일)이 설날과 겹쳐 분주함을 피하느라 늦춰졌습니다. 그래서 3월의 정기임원회의(매 월 첫째 주 월요일)일인 3월 5일에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석바랍니다.

3월 18일 또한 일요일이어서 다음 만남의 날은 4월 18일(수) 예정입니다



* 회비 납부 : 국민은행 815601-04-062544 김태종



* 회비 자동이체에 필요한 회원별 '통장계좌번호'를 확인, 접수 중이오니 협조 바랍니다.

이번 '회원만남의 날'에 알려주시고, 담당자 문의 시, 전화, 핸드폰,이메일 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유사 전화 주의)



*찾아오시는 길



시청역(1호선, 2호선) 10번 출구 --> 25m 전방 우측길-->(왼편 빌딩) 배재대학교 배재빌딩B 1층 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38 이하 *
200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조선시대 만큼 옛날로 느껴졌던 역사였습니다. 역사시간에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의미 없이 날짜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기 일쑤였죠. 하지만 오늘 5.18을 추모하며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가 민주 항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늘의 제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
37 최연 *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36 김민 *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5 양희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34 노무 * 빨갱이 폭동
33 노무 *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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