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서울광장 분향 비로 발길 줄었지만…3일간 1500여명 찾아 (2019년-39주년)

시민들이 비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서울 추모 분향에 찾아오지 못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서울광장에 설치된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서울 추모 분향소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는 17~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추모분향소를 설치했다. 17일부터 이틀 간 추모객 1500여명이 분향소를 찾은 것과는 달리 19일에는 새벽부터 내린 비로 분향소에 시민들이 오지 못했다.

추모객의 발길이 뜸 하자 사업회 측은 예정됐던 오후 2시보다 약 1시간 30분 이른 오후 12시26분쯤 해단분양을 하고 분향소 정리에 들어갔다.      
  
정경자 기념사업회 이사는 "지난 1980년 5월 20일에도 비가 왔다. 당시 사진을 보면 우산을 들고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군도 보이는 등 5.18이 비와 관계가 많다"면서 "비가 온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답답했는데 실제로 발길 줄어든 추모제단을 보니 씁쓸하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분향소 향로에 있는 흙은 5.18민주묘지에서 담아온 흙이다. 현수막에 있는 영정사진도 묘소에서 하나하나 찍어서 만든 것"이라며 "5.18의 혼과 정신을 담아온 만큼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찾아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 이도훈씨(21)는 "최근 사회에서 5.18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참석했다"면서 "기대와 달리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아쉽지만 스스로 5.18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5.18 서울광장 분향 비로 발길 줄었지만…3일간 1500여명 찾아 (news1.kr)

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38 이하 *
200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조선시대 만큼 옛날로 느껴졌던 역사였습니다. 역사시간에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의미 없이 날짜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기 일쑤였죠. 하지만 오늘 5.18을 추모하며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가 민주 항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늘의 제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
37 최연 *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36 김민 *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5 양희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34 노무 * 빨갱이 폭동
33 노무 *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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