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부터 5.18까지, 우리 사회 그대로 담은 마당극 (2018년-38주년)

프로젝트명: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연극을 통해 알리고 의식을 일깨워야"

"마당극이 사회이슈를 결합시켜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좋은 것을 느끼고 간다. 세월호 이야기 나오는 부분과 딸이 죽는 장면이 마음에 와 닿았고 되게 슬펐다. 개인적으로 사회부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한 개인이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연극을 통해 사회문제들을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알리고, 문제점을 조금씩 알아가고, 이렇게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영등포 조희수(여, 29)씨의 공연 소감)

13년 만에 서울 대학로에 도전하는 우금치 극단의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1일 아침 9시경 대전 신탄진 I.C 근처에서 우금치 단원들을 만나 그들이 준비한 버스를 함께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전 11시경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앞에서 하차하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도로를 잠시만 걸어도 펄펄 끓는 열기가 온몸으로 치고 들어 와 마치 사막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역대 최강의 폭염에 서울 거리가 마치 찜통 속 같았다.

푹푹 찌는 더위에 사람이 쓰러지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자가 날아오는 이런 살인적인 날씨에 연고 없는 서울의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대전의 '마당극패 우금치'가 공연을 한다니, 스스로 하늘로부터 버림받기를 자초한 것은 아닐까. 누가 이런 폭염에 지방의 일개 극단에서 하는 연극을, 그것도 마당극을 일부러 보러 올까. 열기속 사막같은 서울 거리를 걸으면서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극장의 텅 빈 관객석 장면이었다.

어쨌든 시작한 공연, 우금치 단원들은 공연장 세팅에 바쁘다. 출연할 배우들마저 모두 나서 무대셋팅에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이느라 모두들 온몸에 땀이 흥건히 젖었다. 오후 2시에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가 넘어서야 리허설에 들어갔다. 약 2시간에 걸친 리허설이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었으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공연전에 밥을 먹지 않는다며 무대에 남아 각기 연습을 계속 하였다. 오래만에 서울에 서는 무대라 모든 출연진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긴장감, 초조함도 상당한 것 같다.

우금치의 저력, "찜통더위에도 꽉 찬 관객석"
 

저녁 6시 경,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여전히 더위의 사나운 칼날은 무더지지 않고 온몸을 맹렬히 공격해 왔다. 저녁을 먹고 예술극장으로 돌아온 뒤 무더위에 지쳐 극장안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배우들은 아직도 무대 위에서 연습에 열중이었다. 견디기 힘든 찜통 날씨에 무대셋팅과 리허설, 저녁까지 굶고 저렇게 연습에 몰두하다니. 정신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깜빡 잠이 들어 깨어 나 보니 7시 20분경이다. 8시 공연이라 진행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카메라를 들고 로비로 나가 보았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인가. 로비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런 폭염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이들은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서, 우금치가 활동하고 있는 대전에서, 심지어는 멀리 강원도 원주에서 일부러 우금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 왔다고 말했다. 우금치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전국각지의 사람들이 사나운 폭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금치를 응원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이게 30년 간 한 우물만을 파고 살아 온 우금치의 저력인가.

류기형 우금치 대표를 만나 공연을 앞둔 심정이 어떻는지 물었다.

"우금치가 대전에서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문화예술이 서울에 다 집중되어 있으니 저희들은 촌놈들이죠. 특히 대학로는 대한민국 연극의 1번지 잖아요. 많은 연극인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다양한 칼질을 당하기 때문에 사실 긴장은 많이 됩니다.

저에게 주변 사람들이 왜 아직도 '마당극 연출가 류기형'이라는 소리를 하느냐. 차라리 '아티스트 기형 류'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대학로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저는 한국의 연극이 점점 마당극화 되어 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금치가 양식적인 측면,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에 있는 극단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금치가 지방극단이긴 하지만 서울사람들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질감을 갖고 있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신선한 감동이나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시,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위 70여 좌석을 포함한 400여 석의 극장자리가 꽉 찼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박정자, 남명렬씨 등도 우금치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천강에 뜬 달', 세월호와 5.18, 갑질사회 등을 다룬 해학과 풍자극

마당극 '천강에 뜬 달'은 세월호 사건, 광주 5.18 민주화운동,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과 경쟁, 비정규직 문제, 갑질사회, 청년실업 문제 등을 다룬 해학과 풍자극으로, 프롤로그와 마지막 7마당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설화를 모티브로 하여 구성하였다. 극은 한 노옹이 진실과 인간존엄을 상징하는 철쭉을 따다 주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는데, 바닷가 용에게 납치된 수로부인을 구출하기 위해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바닷물을 치는 장면은 바닷물에 수장된 세월호 아이들과 그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외침과 촛불혁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1마당 '그날의 기억' 과 3마당 '임금님 귀'에서는 망월할매의 꿈속을 통해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인들의 총칼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과 남편의 모습을 재현해 보여 주었고, 꿈에서 깬 망월할매가 "보상도 기념도 다 필요 없다. 죽은 아들 돌려 달라"고 울부짖는 장면을 통해서는 진상조사나 명예회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이런 잘못된 사건 자체가 처음부터 발생하지 못하는 건강한 사회와 국가 시스템 확립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듯 했다.

2마당 '대한민국의 일상'은 보험회사 샐러리맨 정동수의 직장생활을 통해 실적 우선의 자본주의 경쟁에 내몰려 돈에 의해 인간존엄성을 상실해 가는 직장인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 4마당 '대한민국의 숨겨진 얼굴'에서는 사회 고위층인 판검사, 국회의원, 언론사 부인들의 모임과 그들의 비상식적인 대화내용을 통해 사회부조리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5마당 '망각의 두려움'은 망월할매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인들의 총칼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과 남편의 생전 모습들을 차츰 잊어가게 되며, 이러한 사실이 못내 안타까워 스스로 눈물짓는 망월할매의 모습을 통해 망각되어 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 세월호 등의 진상을 철저히 재조사하여 이를 뚜렷하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함을 은유적으로 강조한 듯 보였다.

6마당 '햇님달님이야기'에서는 각종 불이익을 당하며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청년실업 문제점을 다루었다. 공항 용역 청소노동자인 차미순이 고되고 힘든 장시간 노동과 잠시 쉴 공간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모습, 직장 간부들로부터 성희롱까지 당하는 장면들을 보여 준다. 박봉에 쫓기며 어렵게 살아가는 계약노무직 '정벼리'는 배낭 속에 컵라면만 남기고 일하는 중에 사고로 죽게 된다.

"과거와 현재에도 지속되는 문제, 우리가 깨어나 해결해야"

서울에서 왔다는 우문식(여, 53)씨는 공연을 보고 난 뒤 "우금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공연이었다. 우금치가 풍자와 해학을 공연에 잘 반영시키는데, 이번에도 설화와 현실사회의 모순을 잘 결합시켜서 재미있게 극을 잘 만들었다"며 "권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핍박받는 민중들의 삶이 지금만의 문제도 아니고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현재에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문제인데,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 같아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당극을 처음 보았다"는 인천 서구의 임도형(남, 30)씨는 "마당극이 생소해서 어떤 것일까 궁금했었다. 요즘에는 직장 갖기가 많이 힘든데, 청년들이 자기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삶을 잘 풀이해서 만든 연극인 것 같았다"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죽은 아들을 그리워 하는 망월할매의 눈물과, 보험업을 하며 고생하는 아버지 정동수, 청소부로 일하는 어머니 차미순의 극중 삶을 보면서 제 어머니와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관객들과 소통하는 연극이라 좋았고, 세월호나 계약직 청소부들의 시사적인 문제들을 한번 더 일깨워 준 것 같아서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당극패 우금치'는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8월1일~5일 까지 '천강에 뜬달'을, 8월 7일~12일까지는 '쪽빛황혼'을 (평일 8시, 주말 3시) 공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부터 5.18까지, 우리 사회 그대로 담은 마당극 - 오마이스타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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