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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투경찰 피해자, 37년 만에 국가유공자 됐다(2017년-37주년)

[인터뷰] 광주 상황 편지에 썼다가 징역형, 김상회씨 "짐 내려놓은 기분"

(오마이뉴스=소중한 기자)

"37년간 어깨를 누르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전투경찰(아래 전경) 출신의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5.18 당시 전경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0)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1980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던 김씨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광주 상황을 적었다가, 같은 해 6월 5일 전북도경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됐다.

이후 김씨는 전북 계엄합수단, 육군 35사단 헌병대, 광주 상무대 등을 거치며 폭행·가혹행위가 동반된 조사를 받았고, 결국 군법회의(현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불법 연행 기간과 미결구금일수를 인정받지 못한 기간을 포함해 총 1년 100일(1980년 6월 5일~1981년 9월 12일)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관련기사]
1980년 5월, 전경인 내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편지 두 통 때문에 끌려온 영창, 조사관은 곡괭이 들고 '쪼인트'
'5·18은 월요일'에 불과하던 어느날, 잊었던 남자가 왔다
 

이러한 김씨의 상황은 지난해 5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30년 넘게 과거를 가슴에 묻고 살았던 김씨는 지난해 2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7차 보상신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약 1년 동안 심의를 거쳐 지난 1, 2월 김씨를 비롯한 244명을 보상 대상자로 확정했고, 김씨는 지난 3월 29일 이러한 사실을 서울지방보훈청에 알렸다. 그리고 서울지방보훈청은 지난 4월 20일 그를 '5.18민주유공자'로 인정했다.

"5.18 위해 조금이라도 힘 보탤 것"

서울 송파구 자택 인근에서 만난 김씨는 "제 입장에선 (보상 판정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라며 가슴 졸였던 지난 1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김씨는 "(보상 판정 직후) 당시 무죄라고 주장하며 당당하게 숙이지 않았던 것이 결국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출소 후 김씨는 자신의 과거가 알려질까 두려워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고, 결국 1989년 일본에 정착할 마음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유학 생활 동안 5.18 트라우마로 인해 안면마비 증상에 시달렸고,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 2000년 귀국했다. 안면마비 증상은 왼쪽 무릎 통증(조사 당시 폭력)과 함께 김씨가 지금까지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특히 제 과거를 잘 몰랐던 자식 삼남매도 최근 유공자 인정을 받은 뒤 '아빠 고생했어'라고 위로를 해주더라"라며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특히 김씨는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셨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인터뷰 당시 김씨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제가 교도소에 있을 때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한겨울에도 난방을 안 하고 살았다고 한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씨는 "앞으로 5.18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라고 강조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시대에 비켜서지 않고 5.18 및 광주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시의 수인번호를 지금도 제일 중요한 곳의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유공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내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광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광주를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씨는 "제가 지난해 인터뷰에 응한 가장 큰 이유는 지만원씨 등 광주를 폄훼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라며 "최근 5.18 유공자가 공무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들이 나왔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국가 채용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보훈대상자 중 5.18 유공자는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가산점 합격자 역시 전체의 30%에 불과해 근본적으로 싹쓸이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6년 보훈대상자 85만 4356명 중 5.18 유공자는 4225명으로 약 0.5%에 불과하다.

특히 김씨는 "과거의 저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이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라며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란 법률'을 개정해 정부가 추가 보상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 제정된 이 법률은 보상 신청기간이 적시돼 있어 한시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동안 법 개정을 통해 총 7차례 보상이 진행됐지만(김씨는 7차 보상 대상자), 과거 김씨처럼 여전히 보상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상시적으로 보상 신청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왔다. 또 기록되지 않은 사망자·행방불명자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신청뿐만 아니라 정부의 발굴 작업이 필요하는 지적도 있다.

한편 김씨는 지난 5월 18일 정권교체 후 진행된 첫 5.18 기념식을 거론하며 "직접 가서 보진 못했지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임을위한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5.18 기념식이 5.18묘역과 옛 전남도청에서 따로 열리는 등 문제가 많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식에 참석하고 광주시민도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보기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대통령이 격식을 파괴하면서까지 유족을 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대통령으로서의 최고의 위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씨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꼭 실현됐으면 한다"라며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6361&CMPT...

 

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153 ㄱㅅ *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152 이영 * 기억하겠습니다.
151 ㄱㅈ * 희생당한 시민분들이 정말 멋지네요
150 강태 * 5.18 그날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149 나만 *
중학교 1학년 막 입학한 후였다.
갑자기 학교 등교하지 말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는 학교 안가니 무조건 좋았다.
먼 거리 비포장 자갈길을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광주에 폭동이 일었다고 들었다.

518이 끝나고 난 후 분실한 총기를 찾는다며 수업을 매번 빠뜨리고 전교생이 동원되어
강변 갈대 숲을 뒤지면서 총기를 찾아다녔다.
얼마 후 시내 남녀 중고등학생들 모두를 동원하여 대로변 양옆에 도열하게 한 후 검은 차가 지나가면 손을 열렬히 흔들라고 교육을 받았다.
한참 후 검은 차 몇대가 지나가는데 우리는 북한 보신박수 수준과 열광적인 환영식을 강요받았다.
어린 마음에도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3년 후 광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입학하자 마자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대학 정문을 지나 학교를 드나들었다.
전경들이 대학 내로 진입하여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고가던 시절이었다.
대자보를 열심히 읽었다.
뭔가 이 사회가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어렴풋이, 1년이 지나자 518때 공수부대의 학살 장면, 당시 폭도라던 시민들 사이에 한 건의 절도사건도 없었음을 일상적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몰래 돌려보는 518 항쟁 관련 유인물들과 대자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때 정말 이 나라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두환은 반성과 사과 한 번 없이 7년 내내 기세등등했다.
518기념일이 되면 망월동 입구에서 전경들이 닭장차를 대기시키고 무조건 체포하여 버스에 실어 교통수단이 없는 먼 오지에 버려두곤 했다. 그걸 피하기 위해 3KM여 정도를 더 우회하여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하모니커를 불었는데 당일 시위한걸 깜박하고 하모니커를 연주하면서 길게 들이마신 후 일주일동안 목에서 피가래가 계속 나와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일주일 계속된 피가래 증상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건조한 계절이나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물병을 들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래 들려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다시 오늘 518을 맞는다.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정치검사와 그의 졸개들이 이제 국민 여론은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법도 무시하면서 노골적으로 법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어제 윤석열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엄단하겠다고 했다.
야 윤석열 이 더러운 정치검사야,
네 마누라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 이따위로 뭉개면서 또 제2의 채널A사건 만들어 유시민 같은 정적 제거하려고 기도하고 있나?
이런 더러운 놈들이 공정과 상식과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는 이 참담한 현실,
절대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
제주의 4.3도 419 혁명도 80년 광주항쟁도,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여전히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번 봄에는 멀어도 광주에 꼭 다녀와야겠다.
들리는 길에 노무현 대통령님의 고향도 꼭 들러봐야겠다.

148 이문 *
잊지 않겠습니다! 책임자 처벌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 위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147 나현 *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임을 위한 행진곡~함께
146 김석 * 그날을 잊지않으며 오늘의 태양과 하늘에 태그기가 펄락일수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가합니다.
145 양 *

43여년의 기나긴 모진 비바람 속에도 영원히 가슴에 영롱한 의로움의 넋은 계승되고 온전한 믿음의 계승으로 살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불상히 여기신 먼저가신 선대분들의 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고 기억한 한분 한분의 사랑 감사와 경외를 드립니다.
삼가 하늘의 영면은 살아 있는 한분 한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영원한 사랑 입니다.
다시 기억한 민주화의 법:유신독재자 재산환수법+군부독재자 재산환수법+친일혈족의재산환수법= '통합적 국가적 야만의 폭언폭력의 학대자들의 재산 환수법''다르면다를수록 아름답습니다'.
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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