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기억하는 '5.18민주화운동'(2017년-37주년)

[앵커]
오늘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7주년 되는 날입니다. 촛불 시민혁명을 경험한 지금, 5.18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서울에서 5.18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기자]

<영화 '화려한 휴가' 중>

1980년 5월, 광주와 전남에서 신군부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하고 도심은 시민들의 피로 물듭니다.

"신군부의 집권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광주 일대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37년 전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김용만 53세 / 당시 18세, 광주인성고 2학년>
"완전히 봉쇄가 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기 먹겠다고 움켜쥐지 않고 오히려 거리로 가지고 나와서 주먹밥 만들어서 나눠 먹고 그랬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갑자기 수많은 총기가 풀렸는데도 불구하고 은행, 금은방, 전당포 털린 게 없었고요."

<김미선 59세 / 당시 22세, 전남대 3학년>
"그때 당시에 (계엄군을) 피해서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이, 저도 마찬가지지만 엄청난 마음의 부채를 안고 그렇게 살고 있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그것이 가장 크고요. 그게 오래도록 죄책감으로 남아있어요."

37년 전 우리에게 남겨진 기억 5.18.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시대 유산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남겨놓았습니다.

<최병진 회장 / 5.18서울기념사업회>
"적폐를 청산하고 두 번째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고 세 번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법적으로 공식 지정해서 제창하고 네 번째는 특별법으로 5.18 왜곡행위를 막아야 되고 다섯 번째, 5.18 당시 발포 명령자를 찾는 진상규명을 재추진하겠다는…."

서울시청 시민청.

5.18을 기억하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5.18, 위대한 연대' 아카이브전입니다.

전시회는 민주화운동 이후, 진실규명을 위해 벌였던 해외 연대활동 기록물과 사진으로 기억을 더듬게 합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5.18, 위대한 유산'전을 통해 당시의 생생했던 흔적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현장을 뛰어다닌 사진작가들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셔터에 담겨 현재로 넘어왔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18일까지 추모제단이 설치돼 5.18민주영령을 위로 합니다.

시민의 방송 tbs TV는 오늘(18일) 밤 9시 30분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애'를 방송해 그날의 기억을 전합니다.

'오월애'는 기록되지 못했던 시민군과 드러내지 못했던 계엄군, 현재의 광주를 담담한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tbs TV는 또 5.18기념재단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기억하겠습니다 5.18'도 오늘(18일)부터 방송할 예정입니다.

tbs 박철민입니다.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R&seq_80... (동영상 시청 가능)

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38 이하 *
200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조선시대 만큼 옛날로 느껴졌던 역사였습니다. 역사시간에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의미 없이 날짜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기 일쑤였죠. 하지만 오늘 5.18을 추모하며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5.18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가 민주 항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늘의 제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
37 최연 *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36 김민 *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5 양희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34 노무 * 빨갱이 폭동
33 노무 *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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