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현장 기자가 미얀마 언론인들에게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5·18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경상도에서 계엄사령부 발 보도를 접했던 PD, 현재 미얀마 상황을 취재하고 있는 언론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언론보도가 통제된 미얀마 언론인들을 향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매년 진행해온 5·18 광주순례를 대신해 ‘미얀마 시민항쟁을 통해 5·18 정신을 기리기 위한 집담회’를 13일 진행했다.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는 미얀마 언론인들의 힘겨운 상황을 전했다. 2월 1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날 미얀마 모든 언론사는 폐간됐다. 유일하게 허용된 국영방송인 MRTV는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발언과 행보만 방송한다.

대다수 언론인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섰다. 시위 초반, 뉴스가 없어지자 시민들 사이에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졌다. 이에 미얀마 언론인들은 페이스북 ‘버마의 소리’ 등을 통해 사실을 확인,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영미 PD는 미얀마 군부가 언론인들을 체포대상 1위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양곤 인세인 교도소에는 70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수감돼 있으며 12일 실형을 받은 언론인이 나왔다. 군부는 해당 언론인에게 형법 505조 ‘가짜뉴스 유포죄’를 물어 3년 형을 선고했다.

김 PD는 “미얀마에는 쿠데타라는 단어만 사용해도 형법 505로 잡아간다”며 “MRTV가 아니면 가짜뉴스로 치부하며 언론인을 잡아가 길거리에 잡상인으로, 택시기사로 위장해 취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언론인들은 생계유지의 어려움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얀마 중부 몽유아에 위치한 지방 언론사 ‘몽유아가제트’는 군부 압력과 재정 어려움으로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김 PD는 “언론인들이 처한 현실은 비참하고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살해시도가 많다”며 “핸드폰을 거리에 들고 다니기만 해도 검문 대상이 되기에 몰래 영상, 사진을 찍어 해외로 보내기 위해 기자들이 목숨 걸고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장영주 KBS PD는 “당시 경상도에 머물렀는데 언론에는 ‘유언비어 때문에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을 죽여서 쿠데타가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조선일보 만평은 ‘속지 말자, 유언비어’였다”고 회상했다.

장 PD는 “당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국영방송은 군부 아래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기업에 불과한 언론사들이 앞장서 군부의 정권 탈취를 의도적으로 숨겨준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시민들이 국영방송이 제대로 된 보도를 안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이는 해악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 보도를 기대한 민간신문이 고의로 속이는 게 더 큰 해악”이라고 밝혔다.

5·18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유성호 전 한국일보 전국부장은 “광주에서 통신과 교통을 차단하고 언론을 장악해 광주 상황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며 “21일 군의 집단 발포, 22일 외신 등이 광주 금남로에 사망자 60명 안팎, 부상자 600명 정도가 있다고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날 서울에서 발행된 저희 신문은 1면에 2단 크기로 ‘사망자 민간인 1명·군경 5명, 부상자 군경 30명 민간인 미상’이라는 계엄사령부 명령서를 보도했다. 열흘 뒤에 모든 신문이 똑같이 보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얀마가 통제 속에서 SNS 소통을 통해 미얀마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건 다행”이라고 했다.  

김영미 PD는 “광주 참사 당시 사진을 미얀마 시민들에게 보여주면 자기네 사진인 줄 착각한다”며 “미얀마에 광주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우리도 광주처럼’을 외치며 광주항쟁의 결론을 물어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군부가 승승장구했단 얘기를 하면 절망하다가 이제 대한민국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고, 시민을 쏴 죽이지 못한다고 말하면 환호성을 친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인들은 미얀마 언론을 향해 ‘기록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장영주 PD는 “미얀마 언론인들이 기록을 잘 해두어야 한다. 쌓아놓은 자료와 역사가 나중에 군부를 벌하게 된다”며 “광주민주화운동은 결과만 보면 철저히 실패했지만, 그 힘이 6월 항쟁을 이끌었다. 민주주의 신념을 확산시키는 단계라고 믿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성호 기자는 “한국 언론인들이 41년 전 날조 보도 등으로 국민에게 죄지었던 걸 반성하는 마음으로 미얀마 항쟁에 관심을 기울여 의미 있는 보도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영미 PD는 “(미얀마) 언론인들과 회사 형식으로 취재를 하고 있다”며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이라 조심하면서 취재하고 있다. 미얀마와 한국 언론들이 서로 격려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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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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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양 *
2023년 5.18 민주화운동 광주항쟁은 현재도 영원히 함께 계속 되고 있읍니다. 후손과 후대들의 혼란된 생각과 착오로 '참사 사건 사고'로 동일시 하려는 모습이나 태도는 민주화운동의 5.18광주항쟁을 다시 새롭게 역사적 필연성인
유신독재의 만행과 참상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사려 됩니다. 1980년 5.18 '서울의봄' - 군부독재자들의 '계엄령'
- 백주 대낮에 군부독재자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 - 정말로 순수한 시민 한분 한분의 몸마음을 무참히 살육한 반민주적 반인권적 국가적 학대와 폭언폭력으로 보편적 국가적 살인 행위자들 입니다. 얼마나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야 회복이 될 수 있는지도 묻지 말아요. 대한민국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존속될 진상 규명과 배상 및 보상이 '독립적' 존귀함으로 살아 대한민국 순수혈족의 몸마음의 믿음의 거듭남의 민주화운동 계승 영속성으로 지켜내기를 항상 감사와 경외 함으로 모든 영혼 한분 한분을 위해 축원 올립니다. 2023.1.26(목)
글작성자 새문안교회 양윤순집사 금요철야기도 집중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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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ㄱㅅ *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152 이영 * 기억하겠습니다.
151 ㄱㅈ * 희생당한 시민분들이 정말 멋지네요
150 강태 * 5.18 그날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149 나만 *
중학교 1학년 막 입학한 후였다.
갑자기 학교 등교하지 말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는 학교 안가니 무조건 좋았다.
먼 거리 비포장 자갈길을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광주에 폭동이 일었다고 들었다.

518이 끝나고 난 후 분실한 총기를 찾는다며 수업을 매번 빠뜨리고 전교생이 동원되어
강변 갈대 숲을 뒤지면서 총기를 찾아다녔다.
얼마 후 시내 남녀 중고등학생들 모두를 동원하여 대로변 양옆에 도열하게 한 후 검은 차가 지나가면 손을 열렬히 흔들라고 교육을 받았다.
한참 후 검은 차 몇대가 지나가는데 우리는 북한 보신박수 수준과 열광적인 환영식을 강요받았다.
어린 마음에도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3년 후 광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입학하자 마자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대학 정문을 지나 학교를 드나들었다.
전경들이 대학 내로 진입하여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고가던 시절이었다.
대자보를 열심히 읽었다.
뭔가 이 사회가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어렴풋이, 1년이 지나자 518때 공수부대의 학살 장면, 당시 폭도라던 시민들 사이에 한 건의 절도사건도 없었음을 일상적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몰래 돌려보는 518 항쟁 관련 유인물들과 대자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때 정말 이 나라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두환은 반성과 사과 한 번 없이 7년 내내 기세등등했다.
518기념일이 되면 망월동 입구에서 전경들이 닭장차를 대기시키고 무조건 체포하여 버스에 실어 교통수단이 없는 먼 오지에 버려두곤 했다. 그걸 피하기 위해 3KM여 정도를 더 우회하여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하모니커를 불었는데 당일 시위한걸 깜박하고 하모니커를 연주하면서 길게 들이마신 후 일주일동안 목에서 피가래가 계속 나와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일주일 계속된 피가래 증상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건조한 계절이나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물병을 들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래 들려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다시 오늘 518을 맞는다.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정치검사와 그의 졸개들이 이제 국민 여론은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법도 무시하면서 노골적으로 법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어제 윤석열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엄단하겠다고 했다.
야 윤석열 이 더러운 정치검사야,
네 마누라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 이따위로 뭉개면서 또 제2의 채널A사건 만들어 유시민 같은 정적 제거하려고 기도하고 있나?
이런 더러운 놈들이 공정과 상식과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는 이 참담한 현실,
절대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
제주의 4.3도 419 혁명도 80년 광주항쟁도,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여전히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번 봄에는 멀어도 광주에 꼭 다녀와야겠다.
들리는 길에 노무현 대통령님의 고향도 꼭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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