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그리고 ‘광주’

(시사코리아-남재균 기자) 지난달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국민민주연맹이 총선에 압승하자 이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미얀마 곳곳에서 군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미얀마에 유혈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는 21일 현재, 민주화 시위대 최소 24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도심을 장악한 군인들은 점차 테러집단으로 변해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포를 하거나 시민들의 재산을 훼손하고 있다.

 

급기야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넘어 집에 있는 학생을 조준 사격해 숨지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41년 전 광주가 떠올랐다.

 

1980년 광주와 전남 일대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계엄군의 발포 등 만행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218명, 행방불명 363명 등 7천200명이 넘는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군부에 의해 평가 절하되며 ‘광주사태’라는 명칭이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는 데만도 지난한 세월이 필요했고, 당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한 면을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민간인을 사살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유족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 것이다.

“내가 총을 쐈어요. 내가 쏜 총에 사람이 맞았어요”

 

41년 만의 고백과 함께 공수부대원은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40년이 넘는 세월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공수부대원을 만난 유족들은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고마움을 표하고 용서의 말을 했다.

 

“늦게라도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
 
이제 다시 쿠데타에 이어 과잉 진압으로 미얀마 국민을 억압하고 있는 군부에 묻는다.

 

당신들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수십 년의 죄책감이 될 수도 있고, 사죄와 용서를 통한 참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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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68 이신 * 이런 역사는 되풀이 되서는 안됩니다.
모든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67 심유 * 화이팅!
66 심유 * 화이팅!
65 김지 * 5.18문주화운동에 희생되신 모든 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64 이채 *
저는 목포 사람입니다. 저희 아버지 또한 목포사람입니다. 5.18 민주화 항쟁 당시 저희 아버지는 고등학생이셨습니다. 광주와 정말 가까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아버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전까지 폭동으로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폭동이 아닌 것을,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선 편히 쉬세요.
63 김선 *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62 오지 * 나라를 위해 힘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5.18 날은 잊어서는 안되는 날입니다. 멋진 희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쉬세요..
61 금승 *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서는 안됩니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지 폭동이 아닙니다.
5.18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위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를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60 한소 * 1981 5월 18일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겠습니다.
59 나은 * 목숨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위해 힘겹고 용기있게 싸우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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