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주년 연대시 '5월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 송경동 시인
** 5.18 제32주년 서울 기념식에서 낭송된 연대시 입니다
** 시: 송경동 시인 헌정 / 낭송 : 송경동, 박래군, 정동열
5월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송경동
5월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게로니카의 학살보다 더 잔인했다던
더 계획적이었다던
광주 5월은 끝나지 않았다
기단위에 대리석을 쌓고
위령탑을 쌓고
헐벗은 아이의 옷처럼 허술했던 무덤가에
기만처럼 푸른 잔디를 덮으면 광주는 끝나는 것인가
유족들에게 부상자들에게
흥정하듯 몇 푼의 돈을 쥐어주고
몇몇이 시혜처럼 영광처럼
국회의원이 되고 시의원이 되면
광주는 끝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바람따라 구름따라 세월이 가면
미움도 증오도 다 강물처럼 잊는 게
순리이니 무작정 잊어야 하는가
세월의 힘에 기대,
아니다 그렇지 않다
5월은 그런 허무맹랑한 세월의 입김으로 지워질만큼
나약한 차창가 성에같은 것이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5월은 이름을 쫒아 명예를 쫒아
전략적으로 가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5월은 지금도 현장에서 탄압받고 있으며
5월은 지금도 녹슨 철장 안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5월은 지금도 거리에서, 학교에서, 법정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며
그렇게 짓밟혀 간 80년 5월 광주는
지금도 이땅에서 진행 중인
소외와 착취와 편견과 구속과 절망과 분노의
다른 이름일 뿐
5월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누가 5월은 끝났다고 하는가
그에게 묻는다. 이젠 먹고 살만해져서 지켜야할 것들이 생기고
이젠 포기못할 지위와 명성을 얻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그대에게 묻는다. 광주는 무엇이었는가
어떤 정신이었는가
사상의 자유가 보호받고 있는가, 이 나라에서는
도청과 미행과 감식이 이젠 사라졌는가, 이 나라에서는
검열과 사전심의가,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책상머리 잣대로
짜를려는 구태는 사라졌는가, 이 나라에서는
가진 자들만큼 가지지 못한 자들의 권익이 보호받고 있는가,
정리해고 당하는 노동자들의 신종노예인 900만 비정규직의
권익은 보호받고 있는가, 이 나라에서는
그들의 집회와 시위와 결사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가
사라지지 않는 최류가스와 곤봉과 체포조들의 군홧발 속에서
약자들의 연대와 울부짖음은 보장되는가, 이 나라에서는
부당한 외세의 간섭과 입김 앞에 이제 정말 우린 자유로와진 것인가
어느 누가 5월은 끝났다 하는가
어느 누가 5월은 완성되었다 하는가
어느 누가 5월을 단지 부채라고 하는가
5월은 끝나지 않았다. 빈부의 격차가 없어지지 않는 한,
민중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이 주인이 되지 않는 한
5월은 끝나지 않았다. 분단의 철책이 걷히지 않는 한
5월은 끝나지 않았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유롭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한
5월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도처에서
꽃도 십자가도 없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압제에 폭압에 착취에 소외에 죽어가는 한
그들의 절망과 증오와 투쟁이 끝나지 않는 한
5월은 끝나지 않았다
도데체 그 누가 5월을
80년 5월에만 국한하는가,
광주에만 국한하는가
남한에만 국한하는가,
한반도에만 국한하는가,
기만적인 역사바로세우기에만 국한하는가.
5월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서 5월을 지우지 않는 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역사와
인간 앞에 바로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5월은 영원히 우리 곁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로
죽지 않는 영혼으로 남으리라
나태와 안일과 안위와 나약과 비겁의 마음을 물리치는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거기 남으리라
어느 누가 5월을 무거운 것이라 하는가
어느 누가 5월을 딱딱한 것이라 하는가
저기 보이지 않는가, 푸르른 생명의 대지가
이름없이 쓰러져간 거친 풀잎들의 신명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내가 내게서 부끄럽다면 어떻게 5월을 찾으리
내가 묘역에 잠든 5월을 찾기 전
거리에서 일터에서 전선에서 세계 속에서
오늘도 짓밟히고 쫒기고 숨죽인 5월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어떻게 5월을 노래 부르리
삼가 무릎 꿇을 수 있으리
오! 위대한 생명의 5월이여
오! 나아가는 5월이여